보석의 나라 10
이치카와 하루코 지음 / YNK MEDIA(만화)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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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네 길은 네가 찾아내지



《보석의 나라 10》

 이치카와 하루코

 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10.25.



  헤매고 또 헤매며 자꾸 헤매던 푸른 날, 이른바 열넷∼열아홉이란 나이를 살면서 ‘누가 손 좀 잡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손을 잡아 줄 만한 이를 또래나 어른한테서 찾지 못했습니다. 열아홉이 저물고서 텃마을을 떠나 서울이란 아주 커다란 고장에서 대학교에 들어가 살짝 머물 즈음에 ‘타고난 집안과 어버이 돈으로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분’이 문득 한 마디를 하더군요. “너희한테 술은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지만, 너희 길은 너희가 찾아야지.”



“정말로 포스포틸라이트를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달에 가면 네 체질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끄, 끈질기네.” (13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릎 꿇고 앉는 눈높이로 손을 잡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에 다섯 학기를 머물고서 스스로 그만둔 다음에는 ‘앞으로 참다이 어른이란 이름이 걸맞는 살림을 꾸릴 때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하고 어깨를 겯고서 스스로 찾아나서는 길에서 스스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을 손질했습니다.


  이러고서 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며 생각을 거듭 손질합니다. ‘우리 집 어린이부터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눈빛을 스스로 틔우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어버이로 살고, 어른인 나부터 언제나 마음으로 마음을 읽는 손빛으로 하루를 짓는 사랑으로 노래하자’ 하고요.



“신샤가 진심으로 날 공격했어. 유크와 대화하던 중에 케언곰이 날 부쉈어. 월인은 나를 보석으로 여기고, 모두는 나를 월인으로 여겨.” (26쪽)


‘그야말로 막다른 곳에 다다랐는데, 머리가 생각을 멈추지 않아.’ (58쪽)



  자라지 않는 숨결은 없습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랍니다. 자람결이 달리 보일 뿐입니다. 풀하고 나무도 자라며, 돌하고 바위도 자라요. 흙하고 냇물도 자라며, 바다하고 하늘도 자랍니다. 다만, 꽤 많은 분들은 돌이나 흙이 자란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할 뿐더러, 바다하고 하늘이 자란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여기지요. 이런저런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보석의 나라 10》(이치카와 하루코/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을 읽었습니다.



“무기를 안 가지고 갈 거야.” “뭐?” “선생님이 나오지 않은 건, 아직 우리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72쪽)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빛돌(보석)’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냥 돌입니다. 빛이 나지 않는 돌은 없기에 ‘빛돌’이란 이름은 억지스럽습니다만,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여느 돌’하고 ‘빛돌(보석)’을 갈라서 돈으로 셈합니다. 다이아몬드라든지 금쯤 되는 돌이라면 아주 비싸게 값을 매기지요.


  자, 생각할 노릇입니다. 다이아몬드나 금붙이는 생각이나 마음이 있을까요? 다이아몬드나 금은 사람이 깎거나 다듬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까요?


  여느 조약돌이나 바위한테는 생각이나 마음이 있다고 느끼나요? 길에 있는 돌을 우리가 발로 뻥 차면 돌은 아프다고 느낄까요, 안 느낄까요?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숲이며 들을 파헤쳐서 흙이며 땅이며 나무를 이리저리 부수거나 깨뜨리거나 죽이면, 이들 돌이며 흙이며 땅이며 나무는 어떻게 느낄까요?



‘아무것도 생각하면 안 돼. 거짓은 유크가 알아챌 테니까. 기도해 달라는 일념 하나만으로 선생님한테 부탁해야 해. 괜찮아. 잘할 수 있어. 왜나면, 선생님은 항상 나한테 다정했으니까.’ (128∼129쪽)



  어른이란 자리에 선 분들이 아이들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안다면, 오늘날처럼 정치나 행정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경제나 교육이나 종교나 과학이나 스포츠 따위를 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참말로 모든 짓을 멈추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오늘날 어른이 지은 삶터는 어린이가 좋아하거나 즐기거나 사랑할 만할까요? 너무 어른 멋대로 지은 틀은 아닌지요? 게다가 어른 스스로도 썩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고단하거나 지치거나 괴롭거나 짜증스러운 틀은 아닌지요?


  어린이를 제대로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전기를 써야 하는 길’에서 아무 발전소나 섣불리 아무 데나 때려짓지 않겠지요. 핵발전소를 꼭 지어서 이곳에서 전기를 얻어야 한다면, 핵폐기물은 어떻게 건사할는지 빈틈없이 살펴야 할 테고, 목숨을 다한 발전소를 치울 적에 그 ‘시멘트나 방사능 쓰레기’를 어떻게 깨끗하게 갈무리할는지까지 꼼꼼하게 생각할 노릇입니다만, 얼마나 생각한 어른일까요?


  2020년에는 ‘코로나19’라는 이름이지만, 몇 해 앞서는 다른 이름이었고, 앞으로 몇 해 뒤에는 또 새로운 이름으로 돌림앓이가 퍼질 만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신나게 뛰놀면서 아름답게 자랄 만한 터전으로 이 나라를 가꾸는 데에는 마음도 몸도 돈도 힘도 안 쓰니까요.



“월인의 기원이 인간의 영혼이라면, 우리한테서 영혼을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기억을 남겨 놓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179쪽)



  만화책 《보석의 나라》에 나오는 아이들(빛돌)은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백 해에 이백 해에 기나긴 해를 사는 ‘아이들’로 그대로 몸을 이으면서 어느덧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찾아냅니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길은 무엇일까 하고 헤매고 갈팡질팡합니다.


  다들 왜 헤맬까요? 길을 못 찾아서 헤맬까요? 언뜻 보면 그렇지요. 아직 길을 찾지 못하니 헤맨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쁜 모든 일을 내려놓고서 다시 바라보면 좋겠어요. 아이나 어른이 헤매는 까닭은 매우 쉽게 알아낼 만해요. ‘스스로 나아가고 싶은 길이 아직 없’거든요. 길을 가고 싶은데 길이 없으니 헤맵니다.


  ‘남이 지어 놓은 길’은 고분고분 가더라도 신나지 않습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은 얌전히 따르더라도 재미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이 시키는 대로 살지 못해요. 아무리 남이 밥을 차려 주어도 우리 손으로 떠먹어야 하고, 우리 몸이 삭여야 하며, 우리 몸뚱이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힘을 내어 움직여야 하지요.


  헤매야 합니다. 헤매면서 스스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지을 노릇입니다.


  제 길은 제가 헤매면서 찾아냅니다. 그대는 그대 스스로 헤매면서 그대 길을 찾아내겠지요.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해매면서 어른이 나아갈 길을 찾아요. 아이는 아이답게 마음껏 뛰놀고 날고 노래하고 춤추고 어우러지다가 시나브로 아이로서 나아갈 길을 새로 찾아내어 지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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