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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1
아오야마 고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만화책
- 겉얼굴이 아닌 속에 흐르는 마음을
《명탐정 코난 1》
아오야마 고쇼
이희정 옮김
서울문화사
1996.12.20.
아닌데 아니지 않은 척하기에 감춘다거나 숨긴다고 합니다. 그러한데 그렇지 않다고 둘러대기에 겉치레나 겉발림이라고 합니다. 감추기에 나쁘지 않고 치레하기에 얄궂지 않아요. 그저 감춤질이나 숨김질이고, 치레질이나 발림질입니다.
오늘 이 모습이 내키지 않으니 감추고 싶을 만하고, 치레를 하고 싶겠지요. 다른 모습이 되기를 바라기에 꾸미거나 뜯어고치기도 하고, 슬슬 숨기기도 해요.
그러나 겉모습이 어떠하든 대수로운 대목은 마음이에요. 겉모습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미더라도 속마음을 바꾸지 못해요.
“이런 거 가지고 헬렐레 하는 건 좋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해야지!” “진심이라…….” “어휴 참! 왜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거야?” “응? 아, 아니 그냥.” “우쭐해서 사건만 쫓아다니다 언제 한 번 되게 당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14쪽)
속마음이 튼튼하다면 겉을 꾸미지 않습니다. 속마음이 포근히 사랑이라면 겉을 치레하지 않아요. 속마음이 오롯이 즐겁게 흐르면서 빛난다면, 구태여 이를 감출 까닭도 숨길 일도 없어요.
처음에는 가볍게 속였으나 이내 눈가림으로 흐릅니다. 한두 판은 슬그머니 감추었는데 어느새 눈속임이 깊어지고 잔꾀가 늘어요.
어떤 길이 우리 참모습일까요? 어떻게 살아갈 적에 스스로 기쁘면서 동무하고도 반가이 어우러질까요? 서로 더 나은 겉모습으로 치달아야 할까요, 아니면 서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손을 잡으면 될까요?
“신이치! 네가 작아졌다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해선 안 된다!” “네? 왜요?” “네가 신이치라는 걸 알면 또 그놈들이 네 목숨을 노릴 게 틀림업서! 게다가 네 주위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해!” (55쪽)
스무 해 넘게 흐르는 《명탐정 코난 1》(아오야마 고쇼/이희정 옮김, 서울문화사, 1996)는 아주 작은 일이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가볍게 끝날 만한 일이 자꾸 이어가고,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신이치’ 아닌 ‘코난’으로 살아가면서 이 실타래를 스스로 풀어놓지 못합니다.
코난이자 신이치, 신이치이자 코난 곁에서 늘 지켜보는 아이는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요. ‘참마음(속마음)’을 바라보라고 말이지요.
생각할 노릇입니다. 몸이 작아지고 말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을 보면 신이치 그대로인걸요. 마음으로 만날 줄 안다면, 작아진 몸이 대단하지 않아요. 같이 길을 찾으면 되거든요.
수렁에 빠진 동무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수렁에서 건지도록 돕겠지요? 내가 수렁에 빠졌다면 동무는 어떻게 할까요? 소매 걷어붙이고 바로 달려오겠지요? 신이치이자 코난은 아직 동무 곁에서 마음을 열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려 하지 못해요. 이러면서 새로운 눈속임을 풀어내는 길을, 또 혼자서 풀어내는 길을 끝없이 나아가려고 합니다.
“아빠 회사가 일을 안 하면 아빠랑 같이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집사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받아 유괴 사건을 일으킨 거예요 …… 집사 할아버지는 반대했는데 제가 억지를 부렸어요. 그러니까 다 내 잘못이에요.” (112쪽)
2020년 즈음해서 《명탐정 코난》은 아흔걸음 즈음 나옵니다. 앞으로 백걸음이 넘을 만하겠구나 싶은데요, 이렇게 길고긴 이야기로 끌어야 할는지 좀 아리송합니다. 굳이 더 안 끌어도 되거든요.
질질 끄는 이야기를 보며 새삼스레 한 가지가 떠오르더군요. 속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으니 자꾸 겉모습에 매달립니다. 신이치란 아이는 따사로운 동무하고 사랑을 나누는 길보다 ‘수수께끼를 푸는 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이치이자 코난은 가장 큰 수수께끼에서는 늘 달아나요. 좋아하는 동무한테 제 마음을 제대로 털어놓는 그 길, 어떻게 그런 말을 털어놓아야 하는가 하는 수수께끼에서는 언제나 꽁지를 빼더군요.
“네가 뒤에서 사건을 해결해서 모리 탐정을 명탐정으로 키워 주는 거야! 그래서 이름이 알려지면 의뢰가 줄줄줄 들어올 거 아니냐!” “그 푼수 아저씨를.” (124쪽)
바탕이 되는 수수께끼를 풀면 다른 수수께끼는 아무것이 아닙니다. 밑돌을 제대로 놓으면 새 걸음으로 얼마든지 저 너머로 나아갑니다. 첫자리를, 첫구슬을, 첫발을, 자꾸 엉뚱하게 떼려고 하면 동무는 더 외롭겠지요.
곰곰이 보면 코난이 풀어내는 모든 수수께끼는 코난 혼자서 풀 수 없습니다. 늘 둘레에서 돕는 사람이 있어요.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는 숨결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명탐정 코난》은 아흔걸음에 이르도록 이런 수수께끼하고 숨결을 누구보다 신이치이자 코난이 스스로 못 느끼고 못 보고 모르는 채 흐른 셈입니다. 그저 여태껏 수수께끼 풀이로만 내달린 셈이로구나 싶어요.
‘미안하다, 란! 지금은 음성 변조기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만,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어린애 목소리가 사라지만, 그때는 꼭 들려줄게! 나의 진짜 목소리를!’ (182쪽)
마음소리를 나중에 들려주려고 하지 말아요. 오늘 들려주면 됩니다. 마음은 바로 오늘 밝히면 되어요. 마음소리는 바로 오늘부터 들을 노릇입니다. 마음소리를 나중에 들으려고 하지 말아요. 미루면 미룰수록 자꾸 핑계가 생겨요. 미루다 보면 어느새 참마음을 잊거나 잃기 쉬워요.
오늘 첫발을 뗍니다. 첫발을 떼니 두 발도 석 발도 뗄 만합니다. 함께 걸어가면서, 한결 느긋하면서 힘차게 걸어가면서, 어떤 몸으로도 어디에서나 기쁘게 웃음이 피어나는 살림이 되는 줄 알아보는 이야기로, 이제는 《명탐정 코난》을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