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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여덟 살 눈높이’로 말하고 글쓰기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사사키 겐이치
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9.4.19.
이 사전에 실린 세상의 의미는 뭔가 다르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의미 이상의 뭔가를 호소하고 있다. 다른 데는 없는 독특한 문장으로 말하는 이 사전은 평범한 사전이 아니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국어사전인 《신메카이 국어사전》이다. (9쪽)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생물학’이란 낱말을 찾으면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풀이합니다. 틀린 말풀이라 할 수 없습니다만, 어쩐지 허전합니다. 어린이가 읽는 사전에서 ‘생물학’을 찾으니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보리 국어사전)으로 풀이합니다. 영 와닿지 않습니다. 어른이나 어린이가 사전을 뒤적이면서 생물학이 무엇인가를 얼마나 헤아리도록 도울 만한 뜻풀이일까요?
[숲노래 사전]
생물학 : 나는 누구이고 나를 둘러싼 숨결은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얽히면서 이 별에서 아름답고 즐거운 길을 찾아갈 적에 사랑이 될까를 다루는 길. 나를 비롯한 모든 숨결을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살림을 찾으려는 길.
생물학을 다룬 책을 읽고 나서야 ‘생물학’이란 낱말을 찾아볼까 하고 생각했고, 여러 사전을 뒤적이다가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이런 말풀이라면 사람들이 사전을 안 뒤적이겠네 싶더군요.
그렇다면 사전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을 생각하자면 먼저 ‘사전’이란 낱말부터 사전 뜻풀이를 봐야겠지요. 국립국어원 사전은 ‘사전’을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으로 풀이합니다. 어린이 사전은 “여러 낱말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풀이한 책. 낱말의 뜻, 소리, 쓰임새 들을 찾아보는 데 쓴다”로 풀이해요.
어른 사전도 어린이 사전도 뭔가 빠뜨린 듯싶습니다. 더 깊은 뜻이나 대목을 짚어야 할 텐데 슬쩍 지나가거나 놓친 듯해요.
[숲노래 사전]
사전 : 말에 담은 생각을 찾아보면서 삶·살림·사람·숲·사랑을 다시 바라보거나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새롭게 알거나 받아들이도록 돕는 책. 문득 내뱉을 수 있는 어느 한 자락 삶을 오직 한 마디로 그려내어서 늘 새로울 수 있는 살림으로 지피는 이야기가 되는 바탕이 되는 말을 엮어서, 그 한 마디 말을 마음에 생각으로 심고는 ‘오늘·사랑’을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한길로 이어서 즐겁게 나누도록 이바지하는 꾸러미. 나·우리 눈으로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엮은 말을 글로 담은 책. 새롭게 배우는 길에 말로 징검다리가 되는 책.
‘사전’이란 낱말 뜻풀이는 짧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사전을 쓰는 일을 하면서 돌아보는데, 가면 갈수록 제가 쓰는 사전에 담을 ‘사전’ 뜻풀이가 길어집니다. 단출히 말하자면 사전이란 “새롭게 배우는 길에 말로 징검다리가 되는 책”이 될 테지요. 풀이만 담는 책이 아니라 징검다리가 되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기에 사전이라고 여깁니다.
의외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사전 편찬’이라는 분야 자체가 국어학회나 언어학회 등에서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183쪽)
일본에서 사전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사사키 겐이치/송태욱 옮김, 뮤진트리, 2019)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이기에 이런 책이 나올 만하지 싶습니다. 사전이라고 하는 책을 살뜰히 엮어 1000만이라는 사람들이 사서 읽는 일본이라고 하거든요.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은 아직 사전다운 사전을 엮으려는 발걸음이나 땀방울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목돈을 들여서 선보인 국립국어원 사전이 있으나 여러모로 허술하거나 엉망인 대목이 많아, 꾸준하게 손가락질을 받아요. 뜬금없는 올림말이 많고, 맞춤법이 뒤죽박죽인데다가, 겹말풀이·돌림풀이가 끊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야마다가 그런 뜻풀이를 쓴 것은 다른 사전의 모방을 되풀이하는 사전계에 대한 격분과 순수하게 사전의 진보와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204쪽)
한국은 왜 온갖 사전이 아직 허술하거나 얄궂을까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탓이지 싶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볼 낱말은 낯설거나 어려운 낱말이 아니기 마련입니다. 사전이라고 하는 책은 우리 삶자리에서 흐르는 가장 쉬우면서 바탕이 되는 낱말을 찾아보면서 생각을 북돋아야 알맞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은 사전이 가면 갈수록 뚱뚱해지요. 뚱뚱해집니다. 이 말 저 말 자꾸 집어넣어 올림말 부피를 늘리기만 하거든요. 이와 달리 일본 사전은 뚱뚱해지지 않는다고 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낡은 말’이나 ‘쓰임새가 다한 말’은 사전에서 빼낸다지요.
일본이란 나라에서 사전 한 자락을 1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사서 읽는 바탕이라면, 일본은 “읽는 사전”이기 때문이에요. 한국은 “책꽂이 구석에 모셔놓고 먼지를 먹이는 사전”이지요. 일본은 사전에 담긴 낱말을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며 말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한국은 “사전이기보다는 단어장 구실”을 하느라, 말빛이나 말결을 살피는 책이 아닌, “낯설거나 어렵다 싶은 낱말을 좀 흔한 다른 말로 바꾸어 놓은 단어장”에 머뭅니다.
소리도 없이 변하는 ‘말’을 절대적으로 정해진 의미로 한정하는 것은, 국가나 권력이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많은 출판사가 각각의 해석으로 국어사전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좀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376쪽)
입시 얼거리인 한국에서는 예부터 ‘영어 단어장’이 나돌았습니다. 영어 단어장은 사전이 아닌 단어장입니다. 이 영어 한 마디를 저 한국말 한 마디로 1:1로 맞춘 틀이 단어장이지요. 오늘날 숱한 한국말사전은 ‘한자말 : 한국말’이나 ‘한국말 : 한자말’로 맞대어 놓은 단어장 얼거리예요.
일본사전하고 얽힌 숨은 길을 적바림한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고마운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을 읽는 이웃님이 한국말도 한국말사전도 새롭게 바라보면 좋겠어요.
새로운 낱말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아침에 몇 가지 낱말을 새로 지었습니다. 새말짓기는 1984년부터 날마다 했는데요, 흔히 나도는 말이 제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혀짤배기에 말더듬이였던 터라, 웬만한 영어나 한자말을 소리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소리를 내기 부드럽고 쉬운 말로 바꾸는 일을 했어요.
홀어르신·홀할머니·홀할아버지 ← 독거노인
-바라기 ← 추종자, 팬(fan), 지망생
포근말·좋은말·꽃말 ← 덕담
맛길·맛내기·맛솜씨 ← 레시피, 조리법, 요리법
사전에 ‘나몰라’는 오르지 않습니다만, ‘소극적, 방관, 방치, 외면, 도외시’ 같은 뜻을 ‘나몰라’로 즐겁게 나타낼 만하고, 이렇게 쓰는 분이 무척 많아요. 때로는 ‘나몰라라’ 꼴로도 씁니다. ‘아이돌봄’이란 말은 ‘육아, 양육, 보육’을 담아낼 수 있어요. 예전에는 ‘보모, 보육사’라 하고 요새는 ‘베이비시터’란 영어도 쓰지만 ‘아이돌봄이(아이돌보미)’란 말을 즐겁게 쓸 만하지요. 글만 쓰는 사람을 놓고 ‘전업작가’라고 하던데, ‘-잡이’란 낱말은 어느 일을 깊게 할 적에 써요. 이 틀을 헤아리면 ‘글잡이·붓잡이’란 말을 새로 쓸 수 있습니다.
《산세이도 국어사전》의 편자인 이마 씨는 좀처럼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이 점을 강하게 호소했다. “초등학생들도 알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어렵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알 수 있고 또 어른들에게도 부족함이 없도록 설명한다는 이 방침은 현재도 준수하고 있습니다.” (146쪽)
사전 뜻풀이뿐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 쓰는 말글이라면 으레 ‘여덟 살 눈높이’가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열 살 눈높이’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다섯 살 눈높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훨씬 좋다고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눈높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함께하거나 나누거나 어깨동무하는 품이나 틈은 더욱 넓거든요. 다섯 살 눈높이로 알아들을 사전풀이라면 다섯 살부터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전문가 눈높이로 쓴 사전풀이라면 전문가 말고는 모르겠지요.
사전을 비롯한 모든 인문책이, 또 신문·방송이 부디 적어도 여덟 살이나 열 살 눈높이로 맞추면 좋겠습니다. 여덟 살이나 열 살 눈높이인 사람부터 누구나 쉽고 즐거우면서 넓게 온누리를 품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길을 밝히면 좋겠어요. 그때에는 사전뿐 아니라 이 별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