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그림책에 쓰는 글 : 그림책은 누구나 읽는 책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그림이며 글을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많이 배운 사람만 알아볼 수 있다든지, 어린이가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말은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쉬운 말’이 누구한테 어떻게 쉬운 말인가를 찬찬히 알아야 할 테지. 세 살 아이한테 ‘쉬운 말’이란 무엇일까? 다섯 살 아이한테 ‘쉬운 말’이란 무엇일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는 무턱대고 ‘쉬운 말’을 쓰지 않는다. 첫째로는, 줄거리를 살필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춘 말’을 쓴다. 둘째로는, 줄거리에 담은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추면서, 이 말을 바탕으로 생각을 새롭게 지피도록 잇는 다리 구실을 하는 말’을 곁들여서 쓴다. 두 갈래 말을 그림책에 써야 하는 셈일 테지. 보기를 들어 보면 이렇다. “개미가 짐을 지고 가네.” 같은 글줄이 나올 수 있는데, 아이는 ‘짐’을 모를 수 있다. “‘짐’이 뭐야?” 하고 물으면 “응 ‘지는’ 것을 ‘짐’이라고 해요. 그래서 “짐을 지고”라 하지.”라 보탤 만하다. 이다음으로 “개미는 짐이 많아 지게에 지고서 가요.” 하는 글줄이 나올 수 있으니, 아이가 다시 “‘지게’가 뭐야?” 하고 물을 테고 “응, ‘지는’ 것을 담으려고 하는 것을 ‘지게’라고 해. 우리가 뭘 집을 적에 ‘집게’를 쓰지? 집을 적에는 ‘집게’, 짊어질 적에는 ‘지게’를 쓰지.”처럼 들려줄 만하다. 그러니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흐르는 말은 삶이며 살림이며 사람이며 숲이며 사랑을 읽는 바탕이 되는 말이 하나이면서, 바로 이 바탕말에 살을 입혀서 찬찬히 너비나 깊이를 더하는 말이 둘인 셈이다. 다릿목처럼 잇는 말을 쓸 노릇이라고 할까. 보기를 더 들어 본다. 어른한테는 익숙할 한자말 ‘항상’일 테지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서는 이 한자말이 아닌 ‘늘·언제나’를 비롯해서 ‘한결같이·줄곧’ 들을 쓸 적에 말빛을 슬기롭게 일깨울 만하다. 왜 그럴까?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을 하나둘 입으로 터뜨리고 눈으로 보여주고 줄거리란 살을 붙여서 이야기로 들려줄 적에 아이는 마음으로 이모저모 생각이란 씨앗을 스스로 심을 수 있다. 단답형 시험문제처럼 외워야 하는 낱말이 아닌, 이 낱말을 듣고 헤아리면 다른 낱말을 어림할 수 있고, 그 다른 낱말에서 새로운 낱말을 생각하고 깨닫도록 하는 낱말이 바로 슬기요 노래가 된다. 한자말 ‘음악’이나 영어 ‘뮤직’은 어떨까? 이런 말도 나중에, 아마 열대여섯 살쯤 지나서 쓸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린이는 ‘노래’ 하나를 바탕으로 삶을 더 깊고 넓게 읽도록 하는 길을 둘레 어른이 상냥히 이끌어야지 싶다. 즐겁게 노래하고, 새랑 풀벌레가 노래한다. 놀이를 하며 노래를 한다. 같이 노래를 하고, 혼자 노래를 한다. 일하며 노래하고, 마실하며 노래한다. 하루를 노래하고, 별빛을 노래한다. 어린이노래라는 ‘동요’란 ‘단출히 지은 이야기인 동시’에 가락을 입힌 숨결이니, 이 모두가 어떤 노래란 숨인지 두고두고 다스리고 누릴 적에, 이다음으로 온갖 말을 건사할 만하다. 한국은 아직 ‘그림책 글’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다루거나 돌보거나 손보는 눈길이 없다고 느낀다. 어린이 눈높이를 안 살피는 그림책 글월이기도 하고, 어린이 살림결을 안 읽는 그림책 옮김말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그림책에서뿐 아니라 어른문학이나 인문책이나 여느 교과서도 사회 곳곳에서 쓰는 모든 말도 ‘삶을 바탕으로 새롭게 생각을 지피는 말’을 써야 아름다울 텐데. 2019.12.12.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