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초등학생과 그림책 : “초등학생이 되면 그림책과 멀어진다”고 하는 말은 어느 전문가가 하더라. 이 말이 맞을까? 이 말을 한 전문가는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이 좋다. 무엇보다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과 생각이 어설프지만, 그 어설픔도 받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아이들은 기꺼이 이야기에 빠져든다.”고도 덧붙인다. 이 말은 맞을까? 어른이란 나이로 전문가란 자리에 있으니 ‘아이들 말과 생각이 어설프다’고 하는, 참 윽박질을 하는 말을 펴는구나 싶네. 어떻게 아이들 말과 생각이 어설픈가? 어른들처럼 전문용어를 안 쓰니 아이들 말이 어설픈가? 아이들은 말이며 생각이 늘 처음부터 오롯이 빛났다. 나이를 먹었거나 전문가라 내세우는 숱한 어른이 이 아이들 말빛하고 생각빛을 꾸밈없이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들 말빛하고 생각빛을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북돋아서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려고 하는 즐거운 어른이라면,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나 나카가와 치히로 님 같은 그림책을 빚으리라. 아이들은 학교에 매이거나 길들지 않을 적에 언제나 스스로 눈빛을 밝혀서 삶빛을 짓는 놀이로 둘레를 환하게 가꾸는 줄 깨닫는 상냥한 어른이라면, 엘사 베스코브 님이나 가브리엘 벵상 님 같은 그림책을 엮으리라.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찾고, 스스로 사랑을 나누며, 스스로 꿈을 씨앗으로 심는 줄 깊고 넓게 살펴서 곱게 품을 줄 아는 멋진 어른이라면,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나 바바라 쿠니 님 같은 그림책을 빚으리라. 오늘날 학교(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보라. “넌 아기도 아닌데 웬 그림책?” 하는 눈길이나 말을 초등학교 교사나, 또래 다른 어린이가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말해서 함부로 읊는가? 나는 마흔 살이 훌쩍 넘고 쉰 살로 달려가는 아저씨 어른인데, 너덧 살쯤 되는 아이가 슬금슬금 내 곁에 다가와서 “저기, 아저씨는 아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왜 그림책을 읽어요?” 하고 묻더라. 이런 일이 흔하다. 큰책집에 가서 그림책 있는 칸에서 그림책을 볼라치면 ‘아이를 둔 아주머니’는 ‘그림책 읽고 장만하는 나이든 아저씨가 수상하다’면서 큰책집 일꾼을 부르거나 딴곳으로 휙 사라진 적도 잦다. 우리네 학교나 사회를 보면, 그림책이 뭔지, 만화책이 뭔지, 사진책이 뭔지, 아니 책부터 뭔지, 책읽기가 뭔지, 배움과 가르침이 뭔지, 삶과 사랑과 살림이 뭔지, 사람이란 숨결이 뭔지, 숲하고 짐승하고 벌레가 뭔지, 이런 대목부터 하나도 제대로 이야기를 펴지 않은 채 ‘나이에 맞추어 차곡차곡 제도권 학교 교과서 틀에 끼워넣고서 입시시험을 달달 외우는 길로 내몰기’만 한다. 틀에 박힌 말과 생각에 사로잡힌 어른(교사와 어버이)이라든지, 이런 틀에 박힌 말과 생각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또래가 읊는 “넌 아기도 아닌데 웬 그림책?” 같은 말에 안 휘둘리는 아이가 있기도 하지만, 꽤 많은 아이들은 이런 말 다음에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나 손가락질이 잇따르는 줄 몸으로 느끼면서 두려워 그림책을 내려놓곤 하더라. ‘만화책’을 놓고는 어떠한가? 아름다운 만화책을 모르는 어른(교사와 어버이)이나 또래는 “하찮고 수준 낮은 만화책을 왜 봐?” 하고 여기는데, 이때에 스스로 하고픈 대로 아름다운 만화책을 찾아서 보려는 아이가 있고, 어른이나 또래 말에 휘둘려서 ‘감정을 숨기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하는 아이가 있다. 우리는 즐거우려고 그림책을 읽는다. 우리는 슬기로운 눈빛을 배우기에 만화책을 읽는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살림손을 만나려고 그림책을 읽는다. 우리는 넉넉한 품으로 참사랑을 나누는 기쁨을 노래하려고 만화책을 읽는다. 2019.12.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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