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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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543


《여행의 이유》

 김영하 글

 문학동네

 2019.4.17.



우리의 중국 여행에 돈을 댄 재벌 기업들은 사회주의의 현실을 본 젊은 운동권들이 ‘정신을 차리’고 투항하기를 바랐을 테지만, 우리는 그들의 의도대로는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36쪽)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만 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만 봐도 그렇다. (63∼64쪽)


서울로 올라와서부터는 내내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셰퍼드 같은 대형견은 다시 키우기 어려웠다. (211쪽)



  어떤 분은 아침연속극에 푹 빠져서 삽니다. 아침부터 치고받고 거친말·거짓말이 춤추는 줄거리를 다루는 방송을 안 보면 하루가 꽉 막힌다고 여기곤 합니다. 어떤 분은 미국연속극(미드)이나 일본연속극(일드)을 좋아합니다. 하나하나 챙겨서 볼 뿐 아니라 본방사수나 재방송에 디브이디까지 알뜰히 건사합니다. 어떤 분은 연속극을 아예 안 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집에 텔레비전을 처음부터 안 들여놓습니다.


  어떤 분은 베스트셀러만 읽습니다. 어떤 분은 베스트셀러하고 스테디셀러를 읽습니디다. 어떤 분은 베스트셀러는 안 읽습니다. 어떤 분은 스테디셀러조차 안 읽습니다. 어떤 분은 남이 무어라 비평하든 안 따지고 스스로 마음에 꽂히는 책만 읽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종이책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요, 다른 터전에서 다른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여행의 이유》(김영하, 문학동네, 2019)를 무척 재미있게 읽으면서 올해책으로 꼽을 수 있고, 어떤 분은 안 쳐다볼 뿐 아니라, 애써 읽었으나 몹시 따분할 뿐 아니라 종이가 되어 준 숲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저는 두멧시골에서 살며 이모저모 이야기꽃을 펴려고 나라 곳곳을, 때로는 나라밖으로 마실을 갑니다. 이때에는 집밖에서 일을 보는데, 운전면허 없이 사느라 늘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고, 이러다 보니 어느 고장에 가든 그곳 길손집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곤 합니다. 이동안 여태 제 살림돈으로 호텔이란 이름이 붙은 곳에 묵은 적이 없습니다. 누가 호텔을 잡아 주었기에 묵은 적이 대여섯 날쯤 있습니다.


  하룻밤에 삼십만 원이 웃도는 호텔에서 묵을 적에는 길손집 일꾼이 늘 깍듯이 모시려 하네 하고 느끼면서, 엘이디 불빛이 너무 밝고 시설에 화학약품 냄새가 너무 세다고 느꼈습니다. 여인숙이나 오래된 여관에서 묵을 적에는 불빛이 매우 적고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흔해 밤에 깊이 잠들기에 좋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래도 이부자리는 틈틈이 빨거나 햇볕에 말려 주면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란 이름이 붙은 곳은 저처럼 갖은 살림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한테는 매우 좁고 따순 물을 쓰기 어렵고 바깥바람이 잘 스며들어 밤잠을 이루거나 쉬기에는 좀 힘들구나 싶어요.


  다만, 다 다른 삶이요 사람이며 우리 모습입니다. 돈이 넉넉해서 호텔에서 길잠을 이루어야 좋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 집’이 가장 좋고, ‘둘레에 다른 옆집이 없는 숲속에 깃든 외딴 이웃님 집’이 좋다고 느껴요.


  얇은 판짜임에 가벼운 이야기로 엮은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아침연속극’ 같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아침연속극뿐 아니라 어떠한 연속극도 안 보고, 집에 텔레비전을 안 들이며 삽니다. 저는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스테디셀러도 안 읽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면 베스트나 스테디를 안 가리고 읽습니다만, 아직은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가운데 참답고 사랑스레 베스트나 스테디란 이름을 얻은 책은 몇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만큼 적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봐요. 날마다 쏟아지는 책이 엄청난데, 이 엄청난 책 가운데 베스트나 스테디는 몇 자락쯤일까요?'


  우리는 이런 책을 즐겁게 읽어도 좋고, 저런 책을 재미나게 읽어도 좋습니다. 늘 그럴 뿐입니다. 아침연속극 같은 책은 아침연속극스럽네 하고 알아챌 수 있으면 됩니다. 허풍쟁이 소설은 허풍쟁이 소설이네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저처럼 운전면허조차 안 따고서 대중교통만 타야 ‘환경지킴이’이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살림’이라서 환경을 망가뜨리지는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허울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속에서 감도는 빛이며 숨결을 읽으면 됩니다. 저는 김영하 님 책을 《여행의 이유》로 처음 만났는데, 처음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겠네 하고 배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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