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책집 불빛 : 이웃님이 서울 인사동 어느 마을책집을 다녀오면서 띄운 글자락을 읽었다. 글도 사진도 무척 정갈했는데, 사진으로 들여다본 인사동 그 마을책집은 불이 매우 밝았다. 더구나 책시렁이나 ‘책을 읽는 사람’한테 바로 내리쏘는 불빛이더라. 꽤 아찔했다. 그 인사동 마을책집은 ‘빨리 돌리기(회전율)’를 해서 돈(임대료라든지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 얼거리로구나 하고 느꼈다. 서울 인사동이라는 곳이 달삯이 얼마나 비싼지를 아는 터라, 그 마을책집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줄 알기도 한다. 잘 보면 알 수 있다. 백화점이나 큰가게나 화장품집을 보라. 불이 얼마나 밝으며, 얼마나 머리에 바로 내리쏘는가? 다 그만 한 까닭이 있다. 손님이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면서, 빨리 돈을 쓰고 나가도록 하려는 곳은 그렇게 불빛이 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큰책집을 보라. 얼마나 밝은가? 그렇게 불빛을 밝게 내리쏘는 책집은 사람들더러 ‘이봐? 여기에서 책 그만 읽고 얼른 사서 나가라구!’ 하고 윽박지르는 셈이다. 모름지기 책집이라면 불빛을 가장 부드럽게 하되, 벽이나 천장에 튀겨서 살짝 비추도록 해야 한다. 이런 불빛 다루기를 잘 하는 곳으로 구미 〈삼일문고〉가 있다. 〈삼일문고〉에 들어서기 앞서까지는 구미 시내가 얼마나 어지럽고 자동차 때문에 길을 걷기 나쁜지 모른다. 그런데 〈삼일문고〉에 들어서면 마치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아기’가 된 듯, 매우 아늑하다. 이곳 〈삼일문고〉에서 한나절이나 하루를 꼬박 지내더라도 지치거나 힘들 수 없겠다고 느낀다. 게다가 배고프다는 생각도 안 느낄 만하다. 그만큼 책시렁뿐 아니라 불빛을 잘 다스린다. 몸을 아늑하게 하는 불빛은 오롯이 책읽기에 스미도록 이끄니, 〈삼일문고〉에 와서 사진을 찍는 다른 손님이 많아도 딱히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그만큼 불빛 하나를 잘 다스리면 모두가 아늑하면서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마을스러운 책집인지 아닌지, 아니 책집다운 책집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불빛을 보면 된다. 책은 불빛으로도 바랜다. 책에 바로 불빛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햇빛뿐 아니라 전깃불빛으로도 책이 바랜다. 책을 오래도록 아끼면서 건사한 사람이라면 알 테지. 그래서 책시렁에 천을 드리워 놓기도 한다. 비닐이 아닌 천이다. 천을 드리우면 바람이 천 사이로 가볍게 흐르면서 책을 돌봐 준다. 잘 가꾸는 책집이나 도서관이 왜 살짝 어두운 결인가를 헤아리면 좋겠다. 책집이나 도서관뿐 아니라 살림집도 이처럼 불빛이 살짝 어두워야 좋다. 살짝 어두운 곳에서 지내야 ‘눈도 안 다친’다. 눈이 나쁜 몸이라면 집이나 일터 불빛을 모두 바꿀 노릇이다. 적어도 엘이디나 형광등은 모두 버려야 하고, 백열전구로 갈면 참 좋다. 백열전구는 해를 고스란히 옮긴 불빛이다. 백열전구 불빛에 눈이나 몸이 익숙하면 한결 아늑하면서 기운이 난다. 지나치게 밝은 전깃불빛(엘이디·형광등)은 우리 눈을 갉고 머리를 갉을 뿐 아니라, 책이나 세간 모두 갉는다. 햇빛이나 햇볕도 너무 많이 받아들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리 좋은 햇빛이라 해도 알맞게 맞이하고서 나무그늘에서 몸이며 머리를 쉬어 줄 노릇이다. 다시 말하자면, 집이나 일터나 책집이나 도서관 모두 불빛을 부드럽게 다스리면서, 둘레에 나무가 우거져야 사람이 지내기에 좋다는 뜻이다. 집 둘레가 숲이라면 아주 좋겠지. 책집 곁에도 나무가 우거져서, 나무그늘에서 책을 읽다가 햇빛이며 햇볕을 쬐면서 책을 읽고, 다시 나무그늘로 옮기고,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어떤 책을 손에 쥐고서 읽더라도 누구나 아름다운 눈빛이며 마음이며 몸이 되어 환하게 웃음짓는 기쁜 노래가 흐르’리라 본다. 2019.1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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