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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주인은 나 -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로 이끄는 사고 나침반 ㅣ 비행청소년 14
오승현 지음, 안병현 그림 / 풀빛 / 2017년 6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시렁 153 : ‘생각하지 않’기에 따돌림·괴롭힘이 불거진다면
《생각의 주인은 나》
오승현
풀빛
2017.6.30.
괴롭힘이나 따돌림은 결함 때문이 아니라 약해서 벌어지는 거야. 따돌림을 당하는 대상에게 무슨 큰 문제나 결함이 있어서 따돌리는 게 아니지.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단지 힘없고 약한 사람이야 … 따돌리는 아이들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왜 비난하는 걸까?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거야. (38∼39쪽)
주류는 수가 적어. 실제 주류에 속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주류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다수인 거지. 주류의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거야. (90쪽)
대놓고 차별을 부추겨야 자기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들은 사회적 불만을 진짜 원인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려 하지.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을 사회적 약자에게 표출하게 함으로써 마치 불만이 해소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거야. (91쪽)
경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까? 아니, 행복을 떠나서 사회의 경쟁력을 높여 줄까? (154쪽)
모든 생명체는 모래알이 아니라 물방울이야. 모래알은 다른 모래알과 부딪히면 튕겨 나가지만, 물방울은 서로 스미고 섞이지. (283쪽)
“생각 좀 하고 살아.” 같은 말을 들으며 “생각을 안 했나?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데?” 하고 스스럼없이 묻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생각을 안 했다고?”처럼 발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으면 그렇게 안 하지.” 같은 말을 들으며 “어디에서 생각이 모자랐을까? 알려주면 고맙겠네.” 하고 기꺼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생각을 해서 그렇게 했어!” 하고 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놓고서 달리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갈래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깝거나 어느 쪽 모습을 자주 보여줄까요? 그리고 손윗사람이 물을 적하고 손아랫사람이 물을 적에 얼마나 다르거나 같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학교에서 아직 가르치거나 배울 틈이 적다고 할 만한 대목을 짚는 《생각의 주인은 나》(오승현, 풀빛, 2017)를 읽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하는 줄거리인데, 우리 삶터 곳곳에 있는 학교에서는 무엇을 들려주거나 가르칠까요. 참말로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대목에 온힘을 쏟을는지요, 아니면 진도를 나가거나 대학입시를 치르는 길에 온힘을 쏟을는지요.
배우는 자리라 한다면 ‘사회는 이렇다’를 가르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전은 이러한 얼개요 모습인데 어떻게 느끼거나 생각하니?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가꾸거나 다스리거나 바꾸면 즐겁거나 아름다울까?’ 하고 물으면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먼저 스스로 길을 생각하도록 북돋우리라 봅니다.
‘역사는 이렇다’나 ‘과학은 이렇다’나 ‘문학은 이렇다’ 하고 잘라서 말하거나 가르칠 학교가 아닌, ‘이렇게 적혔는데, 우리는 이 발자취를 어떤 눈길하고 마음으로 읽어야 할까?’ 하고 물어야겠지요. ‘과학이 이러한 길을 왔는데 얼마나 알맞고, 앞으로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하고 물을 만하며, ‘이렇게 쓴 문학이 있으니 다 다른 우리 눈길대로 다 다르게 느끼면서 읽어 볼까?’ 하고 물을 만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의 주인은 나》는 ‘정답은 없다’는 길을 보여주려고 한달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인 정답’이 아닌 ‘다 다른 길’하고 ‘저마다 즐거운 생각’이 피어날 적에 아름다운 삶터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달 수 있어요.
생각하기에 산 목숨이겠지요. 생각하지 않기에 휩쓸리거나 휘둘리겠지요. 생각하기에 오늘이 새롭고 어제가 새삼스러우며 모레가 빛날 만하겠지요. 네 생각이 아름답다면 ‘네 생각이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를 내가 생각해서 판가름할게’ 하고 말하면서,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일는지 안 받아들일는지를 따질 수 있는, 이러한 배움터이자 삶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