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촛불 - 손석춘 칼럼집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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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2


《흔들리는 촛불》

 손석춘

 철수와영희

 2019.10.24.



판결문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다시 정색을 하며 묻는다. 항소심까지 기다려야 했는가? 판결문 앞에서 결국 ‘사실이 밝혀졌다’고 정정보도를 냈어야 옳았는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 기자들은 판결이 있고 나서야 인지할 수 있었단 말인가. (24쪽)


저 대통령들은 자살하는 사람들, 그 국민들에게 누구였을까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국민을 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통사람의 시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국민성공시대를 각각 부르댔지요. (39쪽)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할수록, 뉴스 생산구조가 민주적일수록, 그래서 민중이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며 여론을 형성할수록 선거에서 보편적 복지를 공약하는 정당이 집권한다는 원칙을 도출해낼 수 있다. (71쪽)


현장 노동자와 공사 사이에 소통은 없었다. 중간에 외주업체가 있어서다. 현장의 두 사람은 경주 지진으로 지연된 고속열차가 그 시각에 지나간다는 통보를 받지 못했다. (89쪽)


단적으로 묻고 싶다. 왜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가. 고 노무현 대통령 재직 때 ‘인사 폭’을 넓히지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성심을 다해 돕고자 한 이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적잖았다. (123쪽)



  한밤에 바라보는 별은 초롱초롱합니다. 별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언제나 반짝입니다. 밤마다 별을 바라보다가 ‘초롱’이란 말을 문득 혀에 얹고 생각합니다. ‘초롱’은 촛불에서 비롯한 낱말입니다. 별을 볼 때뿐 아니라 초(촛불)를 볼 적에도 둘레를 밝히는 빛살을 느낄 수 있어요. 별은 온누리를 가르면서 퍼지는 빛줄기라면, 초는 둘레를 밝히는 빛줄기라 할 만합니다. 이 밝음, 이 환함은, 눈망울처럼 밝고 샘물처럼 맑은 기운으로 뻗어요. 별빛을 담고 촛불빛을 안는 마음이 된다면 어둠을 사르면서 곧고 곱게 나아가는 기운이 되지 싶습니다.


  《흔들리는 촛불》(손석춘, 철수와영희, 2019)은 흔들리되 흔들리지 않는 길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른길보다 바르지 않은 길로 기우뚱했던 정치하고 사회하고 언론에 얽힌 이야기를 짚으려 합니다.


  글쓴님이 짚기도 합니다만, 신문이며 방송이며 돈에 맞추어 흘러온 자국이 참으로 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푼푼이 모아서 나누는 돈이 아닌, 몇몇 기업이나 기관(또는 정부)이 광고삯 이름으로 건네는 돈에 맞추어 흘러왔다고 할 만합니다. 신문·방송은 오래도록 짬짜미로 움직였고, 기업하고 기관(또는 정부)은 넉넉히 건넨 광고삯 도움을 톡톡히 입으면서 썩 바르지 않은 길을 나란히 걸은 셈이로구나 싶어요.


  광고가 나쁠 일도, 신문이며 방송이 나쁠 까닭도, 기업하고 기관(또는 정부)가 나쁠 길도 없습니다. 다만, 뒷길이 아닌 앞길을 갈 노릇입니다. 뒷자리 짬짜미가 아닌 앞자리 어깨동무를 할 일입니다. 닫힌 사슬이 아닌 열린 마당이 되도록 슬기를 모을 노릇입니다. 반듯하게 일하는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을 까닭이 없어요. 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쁠 까닭도 없어요. 아름답고 알찬 일꾼은 어디에나 있으나, 이 아름답고 알찬 일꾼이며 이웃을 바라보지 않거나 품지 않는 신문이며 방송이며 기업이며 기관으로 가기만 한다면, 이때에 촛불은 다시 밀물결이 되겠지요. 어쩌면 촛불물결이 다시 일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주저앉을 수 있을 테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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