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4.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 글, 혜화1117, 2018.5.5.


책을 사 놓고 한 쪽조차 안 펼친 채 한 해하고 여섯 달을 묵히다가 드디어 오늘 집어들어 펴는데, 문득 글쓴님을 두 곳에서 문득 스치듯 만난 적이 있다고 깨닫는다. 글쓴님은 틀림없이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할 줄 안다’만, ‘마음을 밝히는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녁이 쓴 《외국어 전파담》은 교수라는 자리에서 대학생을 가르칠 적에 쓸 만한 교재로는 알맞겠구나 싶다. 맞다. ‘서양하고 동양에서 흘러온 다국어 교육 정책을 잘 정리한’ 교재이다. 그러나 ‘지구라는 별에서 말이 태어나고 흐르며 이야기로 피어난 살림’은 들여다보지는 못했구나 싶다. 이웃말을 배우는 즐거움이란 좋다. 그런데 이웃나라 말을 ‘학자 눈높이’에서 배우는지, ‘어린이 눈높이’에서 배우는지, ‘수수한 골목사람이나 시골사람 눈높이’에서 배우는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 흐르는 한국말은 무늬는 한글이되 온통 번역 말씨에 일본 한자말이다. 학자로서 늘 보고 듣는 말이 이러할 테니까. 그러려니 하며 읽지만 “외국어 전파담”이 아닌 “제2국어 교육 국가 정책”을 갈무리한 줄거리인 터라, 안팎이 뭔가 안 맞는다. 부디 동시하고 동화하고 옛이야기를 ‘그 나라 말(외국말)로 읽’고 그 나라 수수한 살림을 헤아려 주시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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