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
아라사키 모리테루 지음, 백영서 외 옮김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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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78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

 아라사끼 모리떼루

 백영서·이한결 옮김

 창비

 2013.5.31.



애초에 미국이 군사기지에 관한 이러한 제한조건들을 인정할 리도 없었다. (일본정부는) 가장 중요한 점을 애매모호한 상태로 놔둔 채 기정사실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62쪽)


‘국가’에 있어서 ‘영토’라는 것은 그런 것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그 지역에 사는, 혹은 그곳을 생활권으로 삼는 주민의 이익에 들어맞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근대적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국경이나 영토도 국가의 역학관계나 국제법 이상으로, 그곳에 사는 주민의 자기결정권 내지 인근주민의 생활권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가를 존중해서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121∼122쪽)


동일본대지진은 안전신화를 깨부수면서 또 하나의 구조적 차별을 부각했다. 일본(국민)은 오끼나와에 주일미군기지의 압도적 다수를 떠맡기고 ‘허위의 평화’를 향수했을 뿐만 아니라, 토오호꾸 지역의 벽지에 위험한 원자력발전소를 떠맡기고 거기서 얻는 전력으로 ‘허위의 풍요로움’을 향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141∼142쪽)



  서울에 마실을 나와 볼일을 보고서 용산 기차역에 왔습니다. 제가 타려는 열차가 스르르 미끄러지고 문을 엽니다. 짐을 짊어지고 들어섭니다. 갑자기 나프탈렌을 비롯한 소독약 냄새가 훅 끼칩니다. 어지러운 나머지 자칫 쓰러질 뻔했습니다. 두리번거렸지요. 기차에 있는 뒷간 문이라도 열렸나 하고. 그러나 아닙니다. 온 기찻간이 소독약 냄새입니다. 이 냄새를 저 혼자 느끼며 어질어질한지 잘 모르겠는데,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소독약 냄새가 흐르기에 ‘기차를 잘 건사하는’ 줄 여기겠네 싶기도 합니다. 소독을 끔찍하게 해댄 나머지 잔벌레나 곰팡이 기운을 냄새로 지워버리는 셈이요, 게다가 사람이 쓰러질 판이지만 말예요.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아라사끼 모리떼루/백영서·이한결 옮김, 창비, 2013)는 바로 소독약 같은 이 지구별 이야기를 다룹니다. 뜬금없이 웬 소독약 이야기인가 하고 물을 수 있을 텐데요, 소독약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소독약은 오롯이 화학약품입니다. 소독약으로 고약한 냄새를 지워낸다고 하지만, 엄청난 화학약품인 이 소독약을 쓰면, ‘소독약 기운’은 고스란히 땅으로 스며들고 냇물로 퍼지겠지요. 자, 소독약을 쓴 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먹는 밥에 소독약을 치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뒷간 오줌그릇에 소독약을 쳐야 오줌내를 지운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말예요, 오줌내를 지울 만한 소독약이라면 더욱 모진 냄새가 날 뿐 아니라, 물이랑 흙을 모두 망가뜨리지 않을까요? 소독약 범범인 기찻간이란, 전쟁무기에 총칼에 탱크에 군함에 잠수함에 전투기에 핵무기가 가득한 이 지구별하고 닮은꼴은 아닐까요?


  왜 오끼나와에 모질게 차별바람이 불었을까요? 왜 오끼나와뿐 아니라 지구별 곳곳은 군사기지 때문에 시름시름 앓는 곳이 있을까요? 그 군사기지는 하나같이 ‘평화를 지킬 뜻’으로 세웠다고 하지만, 막상 군사기지가 있는 터에서 예부터 마을을 이루어 살아온 사람들은 숨이 막힙니다. 소독약범벅인 기찻간에서 숨이 막히고 어질어질하듯, 전쟁무기에 잔뜩 둘러싸인 ‘군사기지 마을이 되고 만 그 보금자리’에서 삶을 이을 사람들은 하루하루 숨이 막힐 뿐 아니라 견디기조차 벅찹니다.


  우리는 왜 군사무기로만 평화를 지키려 할까요? 군대나 군사무기가 아닌 길로 평화를 지키는 생각은 왜 안 하려고 들까요? 저쪽이 움켜쥔 군대나 군사무기를 왜 두려워하면서 우리 스스로 군대나 군사무기를 저쪽보다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까요? 우리가 군대나 군사무기를 저쪽보다 더 키워서 움켜쥐면, 저쪽도 우리하고 똑같이 두려움을 키우면서 우리보다 더 센 군대나 군사무기를 갖추려고 악을 쓰지 않을까요?


  오끼나와가 오끼나와가 되는 길이란, 남북녘이 아름답고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는 길이란, 뜻밖에 매우 쉬울 수 있습니다. 두 나라뿐 아니라,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도 한꺼번에 군대랑 전쟁무기를 내려놓도록 ‘두 나라 + 네 나라’ 우두머리가 ‘전쟁무기와 군대 없애기 모임’을 꾸리면 첫발을 뗄 수 있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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