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빗물 : 바다에서 뭍에서 아주 조그마한 물방울이 아지랑이라는 몸으로 바뀌어 하늘로 가볍게 올라간다. 하늘로 오르려면 ‘겉몸’은 있되 ‘속몸’은 무게를 비워야 한다. 바다나 뭍을 놀이마당 삼아서 신나게 누비며 온갖 삶을 겪은 물방울은 저마다 새로운 터로 나들이를 가려고 시나브로 속몸을 비워서 하늘로 몽실몽실 올라가서 모이는데, 이렇게 모인 모습이 ‘구름’이라는 새 놀이마당이다. 구름이 된 온누리 물방울은 서로 수다를 떤다. “난 저기에 가 볼래.”, “난 저쪽이 궁금해.”, “난 저곳을 아직 안 가 봤으니 오늘 가겠어.”처럼. 이러한 수다가 모이고 모여서 드디어 꽝 하고 터지면 비가 되어 바다나 뭍으로 시원시원 내린다. ‘비’라는 이름으로 바뀐 물방울은 신바람을 내면서 날아내린다. 자, 생각하자. 하늘로 갈 적에는 ‘날아오른다’요, 땅으로 갈 적에는 ‘날아내린다’이다. 사람이란 눈 아닌 물방울이란 눈으로 보자. 땅이나 바다로 날아내리는 빗방울은 신바람을 내니 그토록 빠르게 날아내려도 녹지 않는다. 이와 달리 억지로 때려지은 기계인 비행기나 우주선이 빗방울 같은 빠르기로 날아내렸다가는 바로 불타서 사라지겠지. 노래하며 신나는 빗방울이니 구름에서 땅이나 바다로 날아내릴 적에 멀쩡할 뿐 아니라, 대단히 시원하고 상큼하고 산뜻하며 따뜻하다. 시원하면서 따뜻한 물방울이 바로 ‘비’이다. 이 빗방울은 땅이나 바다로 날아내리면서 꿈꾼다. “즐겁게 씻어야지.” 무엇을 씻는가 하면, 하늘에서 땅이나 바다를 바라보던 물방울 나름대로 ‘앙금이나 때나 찌꺼기나 멍울이나 슬픔이나 생채기나 어둠’을 씻으려는 사랑을 품어서 씻으려 한다. 곧, 비가 내리면 온누리는 엄청나게 깨끗하다. 왜 ‘비가 지나간 하늘’이 눈부시게 새파란 줄 아는가? 비는 하늘부터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땅을 씻고 숲을 씻는다. 숲은 왜 아무도 청소하는 사람이 없어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할까? 빗물이 때 되면 알맞게 찾아가서 씻어 주니까. 그렇다면 도시는 왜 더러울까? 도시는 비를 대단히 싫어하고 미워하고 꺼리는데다가 ‘우산’으로 가리고, 자동차 지붕으로 가리고, 아주 손사래를 치니까. 보라, 비가 오는 날 활짝 웃는 낯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하늘로 뻗고서 빗방울을 맞아들이고 혀로 날름날름 빗물을 먹는 사람이 이제 얼마나 있는가? 예전에 온누리가 아주 깨끗하던 무렵에는 모든 사람들이 비가 오는 날에 바깥에 서서 두 팔을 하늘로 뻗고서 몸이며 마음을 씻었고, 혀로 곧장 빗물을 받아서 밥으로 삼아 먹었다. 더구나 오늘날 한국을 보자. 한국은 일본에서 지은 ‘게릴라성 호우’라는 말을 끌어들여서 쓰더니 요새는 ‘물폭탄’이라는 말까지 끌어들여서 쓴다. 아름다운 비요, 청소부 비요, 사랑님 비인 물방울인데, 이 비한테 ‘게릴라성 호우’나 ‘물폭탄’이라고 하는,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소름이 돋는 끔찍한 이름을 붙여서 싫어하니, 도시가 지저분할 수밖에 없고, 도시사람은 하나같이 아프고 앓고 짜증이 넘치고 불같이 성내고 악다구니처럼 다투고, 저마다 제 주머니에 돈다발을 쑤셔박으면서도 이웃사람하고 나눌 줄 모르고, 게다가 숲이 가르쳐 주는 슬기를 담은 책 하나 장만해서 읽을 줄 모른다. 빗물이 사람을 어떻게 씻어 주는가 하면,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첫째, 비를 맞으면 몸을 씻으며 새힘을 준다. 둘째, 비를 맞으면 마음을 씻으며 새기운을 준다. 몸에는 힘을, 마음에는 기운을 준다. 몸에서는 때랑 먼지랑 찌꺼기랑 냄새를 씻어 주고, 마음에서는 멍울이랑 생채기랑 아픔이랑 앙금을 씻어 준다. 그리고 비로 몸을 씻는 동안 빗물결이 가만히 사람몸에 스며들어서 빛이 난다. 이 빛이란 밥이다. 비를 맞는 사람은 배고플 일이 없고, 지저분할 일이 없다. 비를 안 맞는 사람은 늘 배가 고프고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아무리 비누질로 씻고 화장을 하더라도 몸에서 때하고 냄새가 하나도 안 가신다. 2019.9.2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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