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니스 5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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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잔뜩 두려운데, 어떡해야 할까요



《해피니스 5》

 오시미 슈조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9.8.25.



“나도 죽여 줘. 스스로는 죽을 수 없어, 나. 틀렸어. 난 이제. 아아, 왜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53쪽)



  털어놓기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에 참으로 어렵겠지요. 힘이 들기도 할 테고요. 제발 빨리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나, 차라리 죽어서 사라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죽으려 해도 도무지 스스로 못 죽겠구나 싶어 더욱 가슴이 조이면서 더더욱 두려웁기까지 합니다.


  뭔가 잘 해내거나 멋진 모습을 보였다면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일이 없겠지요. 뭔가 안되거나 틀렸거나 일그러지거나 잘못되었다고 느낄 적에 ‘제발, 이 오늘이여 빨리 지나가 주오’ 하고 바라곤 합니다.


  참으로 그 털어놓기 어려운 일이 왜 찾아올까요? 왜 우리는 그런 일을 겪어야 할까요? 꼭 그런 일을 겪어야만 할 까닭이 있을까요?



“난 알아.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유우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필사적으로 노력했어.” (58쪽)



  곪은 곳은 터지기 마련입니다. 곪은 곳이 터지는 까닭은 이제 고름덩이를 더는 안 품고 싶기 때문입니다. 낫고 싶어서, 곪은 살점이 아닌 말끔한 살점이 되어 싱그럽고 튼튼하게 살아나고 싶어서, 드디어 곪은 곳이 터집니다.


  뭔가 일그러지거나 틀렸구나 싶은 일을 스스로 저지르고 말았다면, 스스로 마음에 맺힌 어떤 응어리나 고름이 이제는 터져서 사라져야 할 때라는 뜻이지 싶어요. 다만 응어리나 고름이 터질 적에는 좀 아픕니다. 아니, 꽤 아플 수 있고, 어쩜 이다지도 아프냐 싶어, 차라리 죽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속으로 이렇게 속삭이거나 외쳐 봐요. ‘어디까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앞으로도 내내 아픈지, 다 맞아들여 주겠어’ 하고요. 기쁜 날에 이 기쁨을 한껏 누리듯, 슬프거나 괴로운 날에는 이 슬픔하고 괴로움을 고스란히 맞아들여서 삭여내고는 훌훌 날리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 봐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 다 말해 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르쳐 줘요. 도망치면 안 돼요.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좀 닥치지 그래. 별것도 아닌, 무지몽매한 고깃덩이 주제에.” (79∼80쪽)



  《악의 꽃》이란 만화책이 있습니다. 모두 열한걸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펴는데, 이 열한걸음을 읽어내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아이가 왜 그러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러면서 왜 그러한 말을 터뜨리는지, 이러고서 왜 그러한 길을 가는지, 모두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스스로 스스럼없이 털어놓거나 밝히지 못할까요? 어느 때에 어떻게 속내를 터뜨려서 털어놓아야 할까요?


  《악의 꽃》을 그린 분은 《해피니스》라는 이름을 붙인 만화도 그립니다. 《해피니스》는 이제 다섯걸음째 나옵니다. 《해피니스 5》(오시미 슈조/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9)까지 읽어내면서 ‘마음앓이·마음생채기(트라우마)’란 무엇이고 어떻게 씻거나 달랠 수 있는가를 고요히 곱씹습니다.


  스스로 뜻하지 않았으나 ‘흡혈 괴물’이 된 아이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흡혈 괴물’이 참말로 괴물인지, 흡혈 괴물을 괴물로 여기면서 바라보고 실험체로 삼는 어른들이 괴물인지 헷갈릴 노릇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학교 안팎에서 ‘학교 폭력’이나 ‘학교 따돌림’ 같은 말을 꺼내곤 하는데, 학교가 배움터 아닌 입시싸움터인 흐름으로 치닫게 하기 때문에 폭력이나 따돌림이 불거진 셈 아닐까요? 또 어른들은 툭하면 ‘청소년 언어파괴’ 같은 말을 툭툭 내뱉는데, 정작 어른들부터 한국말을 엉터리로 쓰면서 망가뜨릴 뿐 아니라, 이 삶터에 불법이나 무법이 판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아, 아뇨. 정말 괜찮아요. 그냥, 10년 전 사고났을 때 상처예요. 자꾸 눈에 띄면 주위 분들도 신경 쓰일 테고, 폐가 되잖아요? 그래서 감췄던 건데, 덕분에 벗는 계기가 됐어요.” (178쪽)



  만화책 하나로 얼마나 마음앓이를 달래거나 마음생채기를 씻을 수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잔뜩 두려울 적에는 그 두려움을 그대로 마주할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무엇이 얼마나 두려운가를 똑바로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에서 누구 잘못인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잘못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잘못은 언제라도 따질 수 있습니다만, 먼저 살필 대목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마음’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어떤 마음’으로 다잡아야 스스로 두려움을 새로움으로 바꾸어 내면서 ‘사랑이란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이지 싶습니다.


  두려운 어떤 일이 우리 마음에 있다면, 우리 스스로 아직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등졌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를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판에, 내가 누구를 사랑할까요?



“누나. 벌써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안 돼.” “토모오, 어째서? 이제 겨우 다시 만났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진짜 많은걸.” “안녕. 누나.” (102쪽)



  ‘사람들’이라기보다 ‘어른들’이 보이는 앞뒤 다르거나 겉속 다른 모습에 펄펄 끓는 마음을 그냥 꾹꾹 누르던 ‘아이들’이 어느 날 하나둘 이 불길을 터뜨린다고 해요. 이 불길을 터뜨리면서 그만 이 불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몰라 헤맨다고 합니다. 이 불길에 맞아 일찍 삶을 마감한 여러 아이가 있고, 이렇게 삶을 마감한 아이를 동생으로 눈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모두 ‘기쁨’이나 ‘보람’하고는 멀다고 할 만한 노릇인데요, 이러한 삶길을 담아낸 만화책 이름이 《해피니스》입니다. ‘해피니스’ 아닌 ‘언해피니스’여야 알맞지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쁨이나 보람을 찾으려다가 자꾸 헤매고, 넘어지고, 서로 생채기를 내거나 건드리면서, 끝내 두려움이란 마음을 쌓지 싶습니다. 늘 이 한 마디로 돌아오고야 마는데, ‘스스로 사랑하기’라는 마음으로 그 커다란 두려움을 찬찬히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려움한테 이렇게 속삭여 봐요. ‘두려움아, 넌 내가 아니야. 아니, 넌 또다른 나일 수 있지. 그런데 두려움아, 네 옷을 벗으렴. 넌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잖아. 네 참모습을 보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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