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꽃



 순우리말이 더 어렵다면


[물어봅니다] 그 글들은 한 번씩 다 읽어 봤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순우리말을 쓰지 않아 버릇해서 그런지 순우리말로 쓰면 더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의미가 좀 바뀐다(?)는 느낌도 있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야기합니다] 먼저 ‘순우리말’이 무엇인지부터 짚겠습니다. 사전을 살피면 ‘순우리말(純-)’을 “우리말 중에서 고유어만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고유어’란 낱말을 써서 풀이하니, ‘고유어(固有語)’도 찾아보는데 “1. [언어]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국어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하늘’, ‘땅’ 따위가 있다 ≒ 토박이말·토착어”로 풀이합니다. 사전풀이로만 본다면 ‘순우리말 = 고유어 = 그 말을 쓰는 터에서 예전부터 쓰던 말’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순우리말’이나 ‘고유어’ 같은 이름을 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일제강점기 즈음 이르러 비로소 이런 이름을 썼습니다. ‘토박이말·토착어’ 같은 이름도 쓴 지 얼마 안 된다고 느껴요. 이 또한 일제강점기 어림해서 겨우 불거지고는 더러 썼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1800년대 첫머리, 1500년대, 1200년대, 800년대, 300년대 같은 무렵에 이 땅에서는 어떤 말로 생각을 나눴을까요? 이천 해나 오천 해 앞서는 어떤 말로 마음을 주고받았을까요?


  요새는 쉽게 ‘우리말’이라 합니다만, ‘우리말’이란 말조차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난 말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이 ‘말’을, 여느 말을, 예전부터 죽 흐르던 ‘그냥 말’을 쓰지 못하게 가로막힌 때에 한꺼번에 ‘우리말·순우리말·고유어·토박이말·토착어’란 말이 태어났고, ‘고유어·토착어’는 중국말로 지식을 펴는 길이 익숙하던 이들이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퍼뜨린 말씨요, 이 말씨가 달갑잖으면서 독립운동에 마음을 기울인 쪽에서는 ‘우리말·순우리말·토박이말’이란 말을 새로 지은 셈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요.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말(또는 조선말)을 들을 수 없이 일본말만 들으면서 일본 학교에 다니고 일본글이 적힌 책만 읽어야 하는 판이라면 ‘일본말 = 우리말’이에요. 꽤 많은 한국사람이 이러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뒤에 어쩔 줄 몰라하던 분이 무척 많아요. 해방 뒤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나온 책이나 신문을 살피면 새까맣게 한자투성이랍니다. 한국말 아닌 일본말(일본 한자말)이 익숙한 분은 글을 쓸 적마다 새까맣게 일본 한자말을 그려 넣어요. 한자를 벗긴 한글로 적으면 낯설어하고, 한자말을 어린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풀이하거나 바꾸면 힘들어했어요.


  1980년대를 지나며 책이나 신문에서 한자가 많이 걷혔습니다. 해방 뒤에 태어난 사람이 부쩍 늘어난 탓이에요. 1990년대를 지나고 2000년이 되니 이제 신문에서 한자를 쓰는 일이 없다시피 해요. 2010년대를 지나는 요새는 한자 쓰는 이가 거의 없으나, 새롭게 영어를 쓰는 이가 늘지요. 우리는 이 흐름을 잘 읽어야 해요. 일제강점기에 앞서는 사람들이 ‘순우리말이나 토박이말이나 고유어가 아닌 그냥 한국말’을 스스럼없이 즐겁게 썼어요. ‘깨끗한 우리말’이 아닌 ‘삶·살림을 사랑으로 담은 수수한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때에는 사투리만 있었으니, 다른 고장 사투리가 처음에는 낯설어도 꾸준히 말을 섞으면 다 알아차렸어요. 이와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는 ‘삶을 사랑으로 담은 수수한 말’보다는 ‘일본 한자말, 중국 한자말, 영어, 번역 말씨’라는 네 가지 굴레가 판을 치면서, 이러한 말씨가 책하고 신문에다가 교과서에 방송까지 차지했습니다.


  이리하여 앞으로는 새로운 한국말을 살피고 가꿀 노릇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갓난아기한테 들려주는 말을, 다섯 살 어린이한테 가르치는 말을, 열 살 어린이가 기쁘게 배울 만한 말을 새로 찾고 살찌울 일이라고 느낍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여느 어른이 쓰는 말씨를 열 살 어린이한테 그대로 쓰면 알아들을 만할까요? 아니지요? 저는 ‘열 살이나 다섯 살 어린이’도 함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가다듬으려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익숙하게 듣고 쓰던 낱말이 아니면 아리송하거나 ‘뜻이 바뀌었네’ 하고 느껴요. 꼼꼼히 밝힐 뜻도 살피되, 말에 담는 마음과 숨결을 함께 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순우리말’ 아닌 ‘삶·살림을 사랑으로 담은 말’을 함께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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