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비랑 커피랑 책이랑 (2019.7.20.)

― 대구 〈서재를 탐하다〉

대구 서구 고성로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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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부터인가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란 마실거리가 제 몸에 안 맞는다고 여겨 스무 살이 넘도록 안 마시다가, 군대라는 데에서 하도 고달파 믹스커피를 대접에 콸콸 쏟아붓고서 한칼에 마시곤 했습니다. 뜻밖에도 이렇게 마실 적에 고달픔이 제법 가시더군요. 군대를 마치고서 다시 스무 해 넘게 마흔 몇 살이 지나도록 손사래를 치다가 요즈막 들어 뜨끈뜨끈한 잎물이나 커피가 몸에 잘 들어옵니다. 짙게 타든 묽게 타든, 커피콩이 자라며 받은며 햇볕·바람·빗물을 느끼면서 마십니다.


  구미에서 기차로 대구에 옵니다.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한참 걸었습니다. 시내버스를 탈까 싶기도 하고, 택시를 잡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터를 옮긴 〈서재를 탐하다〉를 찾아가는 오늘 이 길을 걷고 싶더군요. 어떤 마을을 곁에 두고서 이 책찻집을 새로 가꾸시는가 하고 느끼고 싶었어요.


  기차나루부터 〈서재를 탐하다〉에 이르기까지 마을이 싹 허물어지네 싶습니다. 뭔가 와르르 때려부수기는 하는데, 왜 어떻게 때려부수려는지, 이렇게 때려부순 자리에 뭘 하려는지, 그리고 새로 올려세울 으리으리할 것이 앞으로 얼마나 으리으리하게 나아갈는지, 하나도 종잡히지 않는 대구시 모습이 또렷이 보입니다.


  즐거운 보금자리 없이 마을이란 있지 못합니다. 즐거운 마을 없이 도시란 있지 못합니다. 즐거운 고을·고장 없이 나라 또한 있지 못해요. 그런데 벼슬아치를 맡은 이들은 무엇을 바라볼까요? 앞으로 스무 해나 쉰 해 뒤를 얼마나 헤아릴까요?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 뒤에 이 터가, 이 고장이, 이 나라가, 이 별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바랄까요?


  빗물을 잔뜩 먹은 몸으로 〈서재를 탐하다〉에 닿습니다. 커피 한 잔을 받아서 마십니다. 빗물하고 커피물이 어울립니다. 기차에서 새로 쓴 동시랑, 새로 낸 《이오덕 마음 읽기》를 새터 선물로 드립니다. 찬찬히 책시렁을 살피다가 《신들이 노는 정원》(미야시타 나츠/권남희 옮김, 2018)을 먼저 고릅니다. 꼭 한 해 만 멧골로 옮겨 살아가는 이야기를 꽤 푼더분하게 썼습니다. 글결이 나쁘지는 않은데, ‘푼더분’보다 ‘수더분’으로 가다듬으면 한결 낫겠다고 느낍니다.


  《나쓰메 소세키, 추억》(나쓰메 쿄코·마쓰오카 유즈루/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6)을 집으며 살까 말까 망설입니다.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갈 짐이 매우 묵직해질 책입니다. 그렇지만 이 묵직책을 오늘 이곳에서 사서 밤에 길손집에서 읽고 싶습니다.


  《지나가지만 지나가지 않은 것들》(이순화, 브로콜리숲, 2017)이라는 시집을 가볍게 고릅니다. 짐이 잔뜩 있어도 시집을 장만할 적에는 어쩐지 가볍습니다. 묵직책 하나하고 시집 다섯 자락이라 해도, 시집 다섯 자락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왜 다르게 느끼나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시집은 좀 가벼운 종이를 쓰기 때문인가 싶기도 합니다.


  골목에 깃든 책집 〈서재를 탐하다〉 이야기를 담은 ‘생각과 기억과 책과 글’ 1호(2019.6.10.)를 봅니다. 1호 다음으로 2호도 나올 이 골목신문은 이 책집에 찾아오기에 만날 수 있습니다. 골목하고 마을이 책집을 품은 이야기를, 책집이 골목하고 마을을 품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생각하며 빗소리를 듣습니다. 이 빗물은 모든 앙금을 씻고 갖은 티끌을 고이 달래는 숨결이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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