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66


 창구


  시골길이나 서울길은 멀기 마련입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든, 서울에서 시골을 가든 꽤 오래 달려야 하지요. 먼길을 달리는 버스를 타면 으레 앞자리 머리받이에 적힌 “안전띠 착용”이란 글씨가 보입니다. ‘안전벨트’에서 영어 ‘벨트’는 ‘띠’로 고쳐썼네 싶으나 한자말 ‘착용’은 좀처럼 ‘매기·매다’로 고쳐쓰지 못합니다. “안전띠 매기”라 하는 분도 많지만, 적잖은 어른들은 아직 ‘착용’이란 자리에 머무릅니다. 더 헤아리면 자동차에서 몸에 띠를 매니까 ‘몸띠’라 할 수 있어요. 어깨에 매면 ‘어깨띠’가 되겠지요. 허리에 매는 ‘허리띠’를 생각해 보면 말을 어떻게 지으면 한결 나을까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은행으로 볼일을 보러 가니 ‘창구’란 글씨가 곳곳에 적힙니다. 저는 어른이라 이 이름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다가도 ‘손님맞이·맞이칸·맞이터’처럼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고도 생각하고, 수수하게 ‘자리’라고만 해도 좋겠구나 싶어요.


  마침 아이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저기 ‘창구’라고 적힌 데는 뭐야?” “사람마다 은행에 와서 볼일이 달라. 그래서 어떤 볼일이 있는가에 맞추어서 다르게 가서 묻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가리켜.”


  은행을 두리번두리번하는 아이들이 또 묻습니다. “저기 ‘VIP룸’이라고 적힌 데는 뭐야?” “저곳은 큰돈을 만지는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라고 해. 이를테면 ‘큰손님칸’이라고 할 수 있겠네.” 


  은행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 생각합니다. 은행뿐 아니라 여느 가게에도 아이들이 못 알아들을 만한 글씨가 넘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매한가지요, 책은 더더구나 아이들 눈높이를 안 헤아리는 말씨가 철철 흘러요. 버스나 기차에서도 이와 같고, 여느 학교나 관공서도 엇비슷합니다. 모두 ‘좀 배운 어른 눈높이’에 따라서 글을 써붙여요. ‘누구나 알아보기 좋’게 한다든지 어린이가 쉽게 바로 알아차릴 만하게 글을 써붙이지 못합니다.


  어떤 말을 쓸 적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말을 쓸 적에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스러운 나라를 이룰까요? 우리는 아무 글이나 쓰는 길에 흠뻑 젖어버리지 않았을까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