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 사러 왔습니다 (2018.3.14.)

― 부산 〈고서점〉

051.253.7220

부산 수영구 수영로464번길 19, 2층



  2001년부터 해마다 부산 보수동으로 찾아갔다가 2014년에 어떤 일을 치르면서 네 해 동안 발을 끊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가서 그동안 달라진 자취를 살핍니다. 예전 간판을 떼고서 새 간판을 붙인 모습이 눈에 뜨이는데, 예전 간판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예전 간판을 ‘헌책집 자취(역사)’로 삼아서 잘 건사해 두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쓰레기로 치웠을까요?


  2019년에 새터로 옮긴다고 하는 〈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얼추 스무 해를 거의 해마다 만나던 헌책집이 깃들 새로운 보금자리에는 어떤 숨결이 흐를까요. 어쩌면 보수동에서 〈고서점〉이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보겠구나 하고 느끼면서, 이 헌책집 한 곳이 그동안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얼마나 땀흘렸는가 하는 나날이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이제 보수동이란 곳은 누가 나서지 않아도 이름터요 멋터가 되었겠지요. 다만 이곳에서 ‘보수동 책방골목 잔치’를 꾀하고 이끈 일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대목은 남겨 놓고 싶습니다.


  《제주도 수필》(석주명, 보진재, 1968)을 봅니다. 짝이 안 맞는 하나로도 반갑습니다. 헌책집을 찾아가며 이런 아름책을 만날 적마다 어떻게 제 손으로 이 책이 올 수 있나 싶어 놀랍니다. 틀림없이 잘 보이는 책시렁에 놓였는데, 숱한 책손 눈길이나 손길을 따라 떠나지 않고 제 눈앞에까지 남았어요.


 《普通學校 農業書 卷二》(朝鮮總督府, 1914)하고 《朝鮮語學習帳 第一號》(?, 1914)를 고릅니다. 같은 분이 쓰던 교과서하고 공책일 테지요. 갓 일제강점기였을 무렵 쓰던 책하고 공책일 텐데, 이분이 쓰는 한자는 매우 힘차지만, 한글은 엉성합니다. 그때에는 다들 이러했으리라 느낍니다. 묵은 《한글사전》(한글편찬회, 동명사, 1953)하고 《농업통론》(백남혁, 대동문화사, 1948)를 집습니다. 말이 흘러온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시론》(김종길, 탐구당, 1965)이라고는 조그마한 책을 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판으로 알찬 책이 나왔어요.


시라고 쓰면 시가 되고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된다는 안이하고도 편리한 사정은 앞에서 말한 시인의 선수적인 기술자적인 성격을 강조한 현대시의 민주주의의 폐단일지는 알 수 없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시라는 딱지가 붙고 시인이라는 호칭이 붙었다고 해서 시가 되고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혹은 군자의 면목으로는 범죄인이오 악동인 적지않은 시인들을 문학사가 매장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시인이라는 하나의 고귀한 사회적인 인간형을 쉽게 가질 수 있는 이유로 아전인수될 수는 없다. (66, 67쪽)


  깨알같은 글씨로 빡빡하게 엮었어도 이러한 책이 태어난 대목을 반기면서 좋아하던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책을 깨알같은 글씨로 엮으면 다들 싫어합니다. 글밥이 너무 많다고 여겨요. 즐거이 배울 수 있다면 글밥이 많든 적든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만, 요새는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넘치기에 종이책이 자꾸 얄팍한 길로 갑니다. 얄팍하대서 나쁘지 않습니다만, 종이를 좀 헤프게 쓰는 셈은 아닐까요.


  《길은 멀다》(슬라보미로 라위쯔/최재형 옮김, 코리아사, 1959)하고 《난장이의 독백》(芥川龍之介/신태영 옮김, 규장문화사, 1979)을 고릅니다. 《난장이의 독백》을 읽으니 예전에 읽은 글이네 싶습니다. 사진책 《活動하는 얼굴》(최민식, 삼성출판사, 1973)을 고를 수 있어 고맙습니다. 최민식 님 사진책을 아직 장만할 수 있으니까요.


  손바닥책 《우리의 美術과 工藝》(고유섭, 열화당, 1977)하고 《제주 민속의 멋 1》(진성기, 열화당, 1979)를 고릅니다. 두 가지 책은 우리 책숲에 건사하지만, 굳이 한 자락을 더 챙기려고 합니다. 《농민문화》(한국농촌문화연구회 부설 농민문화사) 111호(1978.12.)라는 잡지가 새삼스럽고, 《月刊 內外 出版界》(내외출판계사) 1977년 1월호도 새삼스럽습니다.


청계천7가 덤핑서적 상가를 가리켜 우리 출판계의 암이라고도 하고 우리 문화계의 치부라고도 한다. 그리고 출판계의 점잖은 분들은 이를 아예 입에 담지도 않으려 하며 애써 외면한다. 외국 손님들의 눈에라도 띨세라 쉬쉬하며 마치 병신 자식 골방 속에 가둬두고 시침떼는 형색이다 … 해답은 간단하다. 당국은 정책이 없고 출판업계에는 청정한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질 만한 맑고 ‘깨끗한 여자’의 수가 적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60, 61쪽)


  1977년 언저리 책마을을 묵은 잡지로 엿봅니다. ‘무궁화문고’란 이름을 단 《북녘하늘 제치고》(손수복, 형문출판사, 1981)는 얼마나 끔찍한 동화책이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독재권력은 아이들을 얼마나 억눌렀고, 그때 글쓰던 어른은 얼마나 아이들 마음을 어지러이 휘젓는 짓을 일삼았을까요? 가만히 보면, 독재부역을 하며 반공동화나 새마을동화를 쓴 ‘어른’이란 분들 가운데 이녁 잘못을 뉘우치고서 어떤 돈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밝힌 이를 아직 못 보았습니다.


  《어린이 그의 이름은 ‘오늘’》(김재은, 태양문화사, 1977)을 보고서 ‘교양국사 총서’로 나온 손바닥책을 여러 가지 고릅니다.


《교양국사 총서 2 한국의 고분》(김원룡,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3 청자와 백자》(진홍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5 불탑과 불상》(황수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8 토기와 청동기》(한병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교양국사 총서 14 한국의 건축》(정인국,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5)

《교양국사 총서 17 한국의 지도》(방동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18 한국의 산천》(손경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19 동학 농민 봉기》(한우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2 신라의 토우》(이난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3 한국의 시가》(박성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4 한국의 무용》(성경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교양국사 총서 25 국악의 역사》(장사훈,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교양국사 총서 28 판소리》(강한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보수동 책방골목의 공간과 사람들》(보수동책방골목, 임시수도기념관, 2016)이란 책이 나온 적 있다고 합니다. 《한국문학의 의식》(김병익, 동화출판공사, 1976)이란 책을 뒤적입니다. 마침 요즈막에 김병익 이분이 ‘문단 미투’를 둘러싸고서 한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스스로 몸담은 그릇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몸짓을 예전 글에서도 느낍니다.


  《현대사를 엮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1》(주간시민 엮음, 중앙출판인쇄, 1977)하고 《부산 시인》 44호(1993.11.)를 고릅니다. 부산사람이 아니면서 굳이 부산 이야기를 다룬 책을 고릅니다. 부산사람이 아니어도 이 땅에서 책이라고 하는 길을 걸어가기에 곁에 둘 만하다고 여기니 살펴봅니다. 《동물의 생활》(조복성, 정음사, 1967)는 부일여중도서관에 있다고 나온 책입니다. 새삼스레 고맙지요. 이런 묵은 책을 건사하다가 내놓아 주기에 저로서는 조복성 님이 쓴 이 책을, 비록 낡아서 바스라지려고 하는 판이어도 기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직장훈련교재》(부산시, ?)는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박정희 군사독재 무렵에 나온 비매품이지 싶습니다.


이 책자는 단순한 외식금지, 출퇴근엄수, 무단이석금지, 당직철저 등의 외형적 복무자세확립을 위해 쓰여진 목적보다, 조국근대화는 결코 물질의 재건만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정신의 재건이 앞서야 한다는 과제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므로, 직장훈련담당관 역시 이 점을 직시하고, 공무원의 보다 철저한 정신의 재건과 윤리관확립에 성실한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머리말)


  책집에 간다면 책을 사려는 뜻입니다. 책집이 가득한 골목에 간다면, 이때에도 책을 사려는 뜻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왔기에 모처럼 보수동 모습을 사진으로도 담지만, 이보다는 온갖 책이 눈에 밟힙니다. 주머니가 닿는 대로 장만하려고 합니다. 《약소민족의 비애와 혁명》(C.볼즈/정문한 옮김, 인간사, 1962)하고 《지나온 세월》(이방자, 동서문화원, 1974)하고 《スポツの施設と用具》(東次右衛門, 旺文社, 1950)까지 고르기로 합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하루를 묵으며 생각하니, 아무래도 아쉬워 1947년에 나온 잡지 《조선교육》(조선교육연구회)도 장만해야겠구나 싶습니다. 책집지기한테 전화를 겁니다. 택배 짐에 이 책을 같이 넣어 달라고 여쭙니다. 책값은 누리은행으로 더 넣기로 합니다. 오늘을 읽으면서 어제를 알고, 어제를 읽으면서 오늘을 압니다. 어제하고 오늘을 읽으니 모레를 알고, 모레를 문득 마음으로 읽으면서 오늘하고 어제가 흘러가는 바람결을 깨닫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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