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정갈하게 어루만지는 손길 (2018.4.1.)

― 도쿄 진보초 〈山陽堂書店〉



  도쿄  진보초 책골목에는 남다르다 싶은 책집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책손이 많고 책집이 많으니 저마다 새로운 빛을 즐길 수 있겠구나 싶어요. 저 책집에서는 저러한 책을 다루니, 이 책집에서는 이러한 책을 다루면 되어요. 그리고 ‘이 책꾸러미’ 가운데 몇 가지에 더 마음을 쏟아서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山陽堂書店〉은 ‘岩波文庫’를 살뜰히 다루는 곳이라고 큼지막하게 밝힙니다. 그렇다고 ‘암파문고’만 있지 않아요. 다른 책도 제법 있습니다만, ‘암파문고’만큼은 이곳이 도쿄에서, 또는 일본에서, 또는 이 별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한국에서 헌책집을 다닐 적에 암파문고를 눈여겨보곤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건드리기조차 어렵겠구나 싶은 갈래를 깊거나 넓게 다루는 책이 꽤 많거든요. 또 책이 참 이쁘고 단단합니다. 여러모로 배울거리가 많아서 암파문고를 즐거이 장만해요.


  오늘 〈山陽堂書店〉에 들러 《光る砂漠》(矢澤 宰·?部澄, 童心社, 1969)이라는 사진책 하나를 먼저 고르고, 《季節の事典》(大後美保, 東京堂出版, 1961)이라는 새로운 사전을 다음으로 고릅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전도 펴낼 수 있군요.


  먼저 두 가지 책을 셈하기로 합니다. 책을 더 보다가 셈할 수도 있으나, 책을 보면서 사진도 찍고 싶어요. 책값을 셈하며 넌지시 여쭙니다. ‘이 아름다운 책시렁을 사진으로 담아도 되겠습니까’라는 말을 일본말로 종이에 적어서 여쭙니다. 책집지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책시렁을 사진으로 찍으려는데, ‘岩波寫眞文庫’를 한 권에 500엔씩에 판다는 글씨를 봅니다.


  손바닥책을 그렇게 알뜰히 펴낸 이곳인데 사진책도 손바닥으로 냈을 테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살핍니다. 아마 1950년에 첫 사진문고를 내놓았지 싶은데, 그때에는 책값이 100엔씩이었다고 적힙니다. 헌책집 〈山陽堂書店〉에서 500엔에 파는 암파사진문고는 1950∼60년대에 나온 오래된 책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집어가고 싶으나, 짐 무게를 헤아려야 하기에 이 책을 고를까 저 책을 집을까 망설이면서 하나하나 살핍니다. 모두 일곱 자락만 고르기로 합니다.


《岩波寫眞文庫 13 心と顔》(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1)

《岩波寫眞文庫 37 蚊の觀察》(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1)

《岩波寫眞文庫 63 赤ちゃん》(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三木淳·?口進, 1952)

《岩波寫眞文庫 88 ヒマラャ, ネパ-ル》(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3)

《岩波寫眞文庫 197 インカ, 昔と今》(岩波書店 編集部·泉 靖一, 1956)

《岩波寫眞文庫 215 世界の人形》(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57)

《岩波寫眞文庫 總目綠》(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1960.3.)


  알뜰한 사진문고를 만나서 반가운데, 《アサヒグラフ》 1962년 2월 18일 임시증간호가 보입니다. ‘皇太子 ご夫妻 東南ア訪問’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판이에요. 이른바 특별판입니다. 이 사진잡지도 고르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책을 고르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잇달아요. 사진기를 거쳐 바라본 책시렁은 눈부시고, 눈부신 책시렁을 밝히는 아름다운 책이 저를 부릅니다. “어이, 나도 좀 꺼내서 살펴봐.” “나는 어때? 나도 한국으로 데려가면 좋겠는데?” “한국에서는 날 본 적이 없지? 그러니까 나야말로 한국으로 데려가 줘.” 책마다 목소리를 내면서 부릅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 사진만 찍기로 합니다. 수다를 떨던 책이 쳇쳇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니. 혼자서는 너희를 다 들고 갈 수 없는걸. 앞으로 너희를 넉넉히 챙겨서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빌게.’ 하고 마음말을 들려줍니다. 정갈하게 가꾸는 정갈한 책집에서 정갈한 손길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롭게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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