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노래] 물 1994-2019


1994.6.20. 조교로 일하는 선배가 오늘 목돈을 벌었다면서 저녁에 술자리를 열 테니 같이 가자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지겹다. 그런 날이 아니어도 그냥 날마다 늘 술자리를 펴잖은가? 속으로 한숨을 쉬다가 생각한다. 옳거니, 어쩌면 오늘이 좋은 ‘날’일는지 모른다.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한다. 아주 벼르기로 한다. 활짝 웃으면서 술집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선배한테 묻는다. “선배님!” “응? 왜?” “오늘 참말로 마음껏 술을 마셔도 됩니까?” “그래! 아까 말했잖아? 오늘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마셔! 하하하!” 선배한테서 다짐을 들었으니 되었다. 1학년 새내기인 우리들은 선배를 가운데에 앉히고 빙 둘러싼다. 500들이 맥줏잔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는다. 맥줏잔을 다 놓고 돌아가려는 술집 일꾼을 부른다. “저기요, 기다려 주셔요.” 내 몫으로 500들이 맥줏잔을 받기 무섭게 한칼에 비우고 돌려준다. “다시 채워 주셔요.” 선배는 이 모습을 보더니 “이야, 술 잘 먹네! 좋아! 그렇게 마셔야지.” 그런데 500들이 맥줏잔 한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술집 일꾼이 내 잔을 새로 채워서 가지고 오면 “저기요, 기다려 주셔요.” 하고는 꼭 44벌을 되풀이했다. 500들이 맥줏잔을 한칼로 비울 적마다 손가락을 꼽으면서 셌다. 넋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셌다. 너덧 벌쯤은 선배가 웃으면서 보다가, 열 벌을 넘고 스무 벌을 넘자 선배 낯빛이 싹 바뀌었다. 그렇지만 나는 44벌까지 달렸다. 이동안 뒷간을 아예 가지 않았고, 그냥 앉은자리에서 500들이 44잔을 한칼에 비웠다. 술자리를 마칠 즈음에야 비로소 뒷간에 갔는데, 얼추 10분 넘게 오줌만 누었다. 어쩌면 20분 넘게 오줌만 누었을는지 모르겠다. 다들 내가 뒷간에 가서 쓰러진 줄 알았단다. 그러나 나는 뒷간에서 10분인지 20분인지 30분인지도 모르도록 오줌만 누었는걸.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버티고 서서 선배한테 말했다. “선배, 앞으로 후배한테 술 좀 사 주지 마세요. 후배한테 뭘 사 주고 싶으시면 그 돈으로 책을 사 주셔요. 저는 책 살 돈이 모자라서 사고 싶은 책을 다 못 사는데, 술값 말고 책값으로 해 주셔요.” 선배는 이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안하다. 앞으로 술 마시자고 안 할게. 내가 아주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뭐 그렇지만 책을 사 주겠다는 말은 안 하더라.


1994.7.14. 선배가 한 달쯤 앞서 있던 일을 까맣게 잊었나 보다. 또 “맘대로 마셔” 술자리를 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선배는 뭔가 징하게 겪어야 하는구나? 오늘도 지난달처럼 500들이 맥줏잔 한칼질을 한다. 오늘은 지난달처럼 44벌까지 달리지 못하고 40벌에서 멈추었다. 아, 40잔은 집어넣었는데 41잔째에서 더는 안 들어가네. 선배가 지난달 일을 떠올린다. “아, 지난달에 똑같은 일이 있었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선배, 이 짓을 두 판째 겪었으니,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맙시다.”


2010.2.28. 잠결에 물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 싶어 퍼뜩 깨어난다. 그러나 꿈이었다. 한숨을 쉬고 입맛을 다신다. 곁님도 잠결에 물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곁님 또한 꿈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린다. 늘 기다리고 언제나 기다리며 자꾸 기다린다.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내 하루하루 삶을 글로 적바림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따순 봄을 기다리면서 내 글과 사진에 조금 더 따순 기운이 스밀 수 있기를 바란다. 잠든 아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깊은 밤에 아이가 쉬 마렵다며 깨어나기에 기저귀를 푸니 벌써 오줌으로 젖었다. 오줌을 참다 못해 조금 지리고 일어났을까. 아이는 제 오줌그릇에 앉는다. 푸직푸직 소리가 난다. 아하, 요 나흘 동안 물똥을 싸더니 아직 속이 안 좋아서 이렇게 또 자다가도 물똥을 싸는구나. 아이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한참 똥을 누는 아이를 기다린다. 다 눈 아이를 안아서 밑을 씻는다. 바지를 다시 입힌다. 이제 속이 개운한지 깊은 밤인데 조잘조잘 떠들며 노래까지 부른다. 아이로서는 깊은 밤이건 한낮이건 아침이건 새벽이건 똑같을까. 놀고 싶을 때에 놀고, 잠보다 밥보다 놀이가 더 좋을까. 아침이 되어 비가 멎는다. 어제는 하루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며 도랑 얼음과 계단논 얼음도 꽤 녹았다. 그러나 다 녹지는 않았다. 아직 비가 찬비인 듯하다. 찬비를 지나 따순비가 되어야, 그러니까 그냥 봄비라 할 비가 아니라 참말로 따뜻한 봄비가 되어 온 들판과 멧자락 얼음과 눈을 스르르 녹일 수 있을 때에 우리 집 겨우내 얼어붙은 물도 녹을 테지. 똑같은 비라 할지라도 찬비는 얼음을 녹이지 못한다. 똑같은 비인데 따순비는 얼음을 녹인다. 똑같은 가슴이더라도 찬가슴은 사람들 마음을 녹일 수 없겠지. 똑같은 글이더라도 따순글이 될 때에 다른 사람들보다 내 가슴부터 사르르 녹일 수 있겠지. 이 비가 지나고 비를 몰고 온 매지구름이 물러나면 바야흐로 따스하면서 살랑바람이 부는 파란 봄하늘이 찾아올까 궁금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거듭 기다린다. 이제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며 걸레 빨아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싶다.


2014.6.9. 오늘 바다로 마실을 가면서 책을 두 자락 챙길까 하다가 한 자락만 챙긴다. 동시책을 한 자락 챙기면서 틀림없이 너끈히 다 읽으리라 여겼으나, 동시책을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책까지 챙기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바다로 마실을 갈 적에 책을 넉넉히 챙기면 나로서는 책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바다로 가면서 책을 챙기면 책을 바라보느라 바다를 덜 바라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끼리 놀아야 할 때가 있다. 이동안 나는 혼자 조용히 동시책을 읽는다. 동시책을 반쯤 읽고 나서 아이들한테 간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모래를 뒤엎느라 바쁘다. 나는 아이들을 살며시 바라보다가 바닷물 찰랑이는 데로 걸어간다. 맨발로 바닷물을 첨벙첨벙 밟는다. 아, 바닷물은 이 느낌이어서 좋지 즐겁지 싱그럽지 하고 생각한다. 혼자서 바닷물을 밟고 누비면서 재미있다. 조금 뒤 아이들이 다가온다. 바닷물을 밟으면서 노는 아버지를 알아챈다. 이제 아이들은 모래놀이보다 바닷물놀이가 훨씬 재미있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닷물에 온몸을 담그면서 아이들은 바닷물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속으로 생각한다. 너희들 참말 물을 좋아하네. 너희들 참으로 바다가 반갑구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물을 좋아하면서 즐길까 궁금하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부터 물을 늘 마주하기 때문일까. 우리 몸은 거의 모두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우리가 먹는 밥이 거의 모두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바닷물에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모래밭으로 나오자고 하면서 동시책을 마저 읽는다. 아이들은 모래밭에서 살짝 있다가 다시 바닷물에 들어간다. 얼른 동시책을 덮는다. 나도 바닷물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섞인다. 세 시간 가까이 바닷물을 누비면서 논다. 바다에 있는 동안 바다만 바라보고 바다만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숲에 가면 숲만 누리고 숲만 생각한다. 집에서는? 집만 바라보고 집만 생각하겠지. 마당에서 제비집을 볼 적에도, 제비집만 바라보면서 제비집만 생각한다. 바다에서 동시책을 읽으면서 바닷물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아마, 동시책보다 바닷물 소리 때문에 책을 더 살뜰히 읽었으리라 느낀다. 동시책이 아무리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바닷물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덮었으리라 느낀다.


2015.8.6. 골짜기에 깃들어 책을 읽으면 대단히 재미있다. 깊고 깨끗한 골짜기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만 해도 아주 우렁차고, 이 우렁찬 물살 소리를 가로지르는 멧새 노랫소리에다가, 바람이 나뭇잎하고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데시벨’로 치면 아주 높은 소리가 퍼지는 골짜기인데, 이런 데에서 책을 손에 쥐면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아주 고요하고 차분하게 책에 사로잡힌다. 골짜기에 깃들어 책을 읽더라도 눈길을 다른 데에 두면 괴롭다. 이를테면 여름날 휴가철을 맞이해서 시골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골짜기에 함부로 버린 온갖 쓰레기가 눈에 뜨이면 ‘책’이 아니라 ‘쓰레기’에 자꾸 눈길하고 마음이 가고 만다. 골짜기에는 ‘쓰레기를 보러’ 오지 않는데, 휴가철 언저리에는 그만 ‘쓰레기에 눈길이 가’니, 이를 어쩌나?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셈이다. 도시에는 자동차가 아주 많다. 여느 때에 ‘자동차 노래’를 부르는 작은아이는 장난감 아닌 실물 자동차가 쏟아질듯이 넘치기에 눈을 뗄 줄 모른다. 도시에서는 작은아이 손을 붙잡고 걷지 않으면 자동차에 휩쓸리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자동차를 안 쳐다본다. 너무 많으니 안 쳐다볼 수 있을 테고, 자동차를 쳐다보면 ‘내 할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지 못하니, 쳐다보아야 할 까닭도 없다. 골짜기에서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 골짝물하고 골짝바람하고 골짝나무하고 골짝이웃이 모두 내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도록 돕는다. 그러고 보면, 배우려는 사람들이 깊은 숲이나 절집으로 깃들려고 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숲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가? 사람들이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도록 이끄는 데가 바로 숲이다. 도시라는 곳에도 찻길하고 건물만 있지 않고 너른 숲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도시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 누구나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어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시라는 터를 지으며 숲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잔뜩 세우는 까닭이라면, 사람들이 못 깨어나도록 할 셈이지는 않을까? 도시에 일자리를 잔뜩 마련해 놓고, 지하상가를 끝없이 뚫으며, 갖가지 문화시설이나 체육행사를 꾀하는 까닭도, 사람들이 숲이라고 하는 살림터랑 배움터를 까맣게 잊고는 쳇바퀴질을 하도록 내몰려는 속셈이 아닐까? 도시에 겨우 마련한 손바닥만 한 공원마다 그렇게 농약을 뿌려대어 잔디밭이건 나무밑이건 앉기 어렵도록 하는 까닭도, 사람들이 풀잎이나 나무한테서 바로 기운을 받아 참다이 깨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종살이에 길들도록 하려는 꿍꿍이가 아닐까?


2016.7.20. 아이들한테 가만히 속삭인다. 얘들아, 오늘은 어떤 날씨가 될까? 너희는 오늘 어떤 날씨이기를 바라니? 아이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시 속삭인다. 자, 우리 하늘을 볼까? 자, 우리 바람맛을 느껴 볼까? 아침 낮 저녁으로 바람맛을 보고 햇볕맛을 보면, 날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어렵지 않다. 그저 몸으로 누구나 알아차릴 만하다. 이러한 날씨는 마당에 설 때뿐 아니라, 마루나 부엌이나 어디에서라도 느낀다. 모든 바람은 온누리를 골골샅샅 흐르기에, 우리 마을이랑 집을 둘러싼 날씨는 내가 늘 마시는 바람결로 헤아릴 수 있다. 시골집에서 살며 마시는 물은 냇물이거나 골짝물이다. 뒷숲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나 숲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땅밑으로 흐르는 물이니 땅밑물이기도 하겠지. 여름에도 겨울에도 늘 흐르는 이 물을 마시면서 새삼스레 아이들한테 묻는다. 우리 어여쁜 아이들아, 이 냇물맛은 어떠하니? 시원하니? 맑니? 다니? 차갑니? 상큼하니? 우리 집 아이들이 삶을 읽고 살림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로 자라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러면서 나도 삶이랑 살림이랑 사랑을 읽는 슬기로운 어른으로 아이들 곁에서 무럭무럭 크자고 꿈꾼다. 밥맛뿐 아니라 풀맛이랑 흙맛을 읽고, 바람맛이랑 비맛을 읽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자고 생각한다.


2018.8.5. 참 오래 한 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맡겼다. ‘나는 헤엄을 못 쳐’ 같은. 이제 이 생각을 더는 안 한다. 요새는 ‘나는 물하고 사귀면서 놀고 싶어’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물에서 헤엄질을 하지는 않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든, 아니면 숨을 다 내뱉은 빈몸으로든, 물속 깊이 잠기며 놀기를 즐긴다. 헤엄질도 재미있을 텐데, 자맥질도 매우 재미있다. 더구나 제법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얌전히 바닥에 앉아 본다든지, 엎드리거나 눕는 자맥질이 매우 재미나네. 자맥질을 할 적마다 조금씩 길게 해 보는데, 내가 물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낼 수 있나 놀라곤 한다. 그렇다고 아직 10분이나 20분쯤 물속에 잠기지는 못하는데, 우리 살갗이 뭍에서는 바람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듯이 물에서는 물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지 않나 하고 문득 느껴 보았다. 굳이 코나 입으로 숨을 가득 담아서 물속에 잠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살갗은 물이 몸속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구실도 하지만, 이러면서 물에 깃든 숨을 알맞게 걸러서 받아들이는 줄 느낀다면, 물속에서 얼마든지 길게 자맥질놀이를 할 만하구나 싶다. 이렇게 자맥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다 보면, 물고기가 물속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함께 느낄 만하네. 뭍에서는 뭍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요, 물에서는 물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로구나. 우리가 뭍에서 으레 적외선 테두리로만 바라보는데, 자외선이나 감마선이나 알파선이나 베타선이나 엑스선을 볼 줄 안다면, 이러한 빛줄기를 보는 눈으로 마음을 활짝 열 줄 안다면, 더욱 재미나겠구나 싶다. 뭍하고 물을 거쳐 하늘을 날며 볼 수 있다면, 그때에는 새가 온누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배우겠지? 종이책을 한동안 덮고서 골짝물에 잠기니, 갖가지 새로운 책이 나를 이끌면서 새롭게 가르쳐 준다.


2019.7.12. 아침이면 물을 4리터 남짓 마신다. 그냥 벌컥벌컥 마신다. 물이 몸에 얼마나 잘 들어오는지 모른다. 아침마다 물을 4리터 남짓 마실 적마다 생각한다. 물을 마시면 굳이 다른 밥을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안 생긴다고. 어쩌면 우리가 물을 안 마시거나 덜 마시니까 자꾸 끼니를 채울 밥을 지어서 몸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하고. 이렇게 물을 신나게 마시다가 어느 날에는 굳이 물을 안 마시곤 한다. 며칠쯤 다른 어떤 밥도 몸에 안 넣고 물조차 안 넣으면서 지내는데 뱃속이나 몸이 매우 가벼우면서 싱그럽다고 느낀다. 이런 때에 새삼스레 생각한다. 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고 몸이 반기기도 하지만, 굳이 입으로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짓을 하지 않더라도 살갗으로 ‘바람에 깃든 물’을 늘 받아들이니 물조차 따로 마실 까닭이 없을 수 있겠구나 하고.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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