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마라는 말씀

스승날이었던 어제를 기려, 오늘 5월 16일 여러 곳에서 충북 충주시 무너미마을로 찾아온다. 지난해에 돌아가신 이오덕 어른 무덤을 찾아가 뵙고, 어른 뜻을 기린다고 하면서. 여든쯤 되는 분들이 오셨고, 함께 무덤 앞에 서서 절도 올리고 말씀도 나누었다. 낮밥 때가 되어서 이오덕 어른 아드님이 사는 작은 집과 붙은 모임칸으로 내려온다. 널찍한 모임칸으로 들어와 비빔밥을 먹은 뒤 비디오를 본다. 이오덕 어른이 예전에 찍은 방송 녹화 풀그림이다.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라는 책이 나온 뒤 어느 방송사에서 찍은 풀그림인데, 어른이 하신 말씀을 꽤 길게 보여준다. 아마 1시간을 통틀어서 어른 온삶을 비추었지 싶다. 방송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가운데쯤에 이르러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무척 힘주어 하시네.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말로 가득찬 책을 읽어서 사람들이 쓰는 말까지 물들고 만다며, 또 책에 갇혀서 이 삶을 볼 줄 모르고, 몸으로 움직일 줄도 모른다고,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다시 또다시 자꾸자꾸 되뇌이시네. 우아, 이렇게 힘주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구나. 어른 글만 읽을 적하고 방송 풀그림으로 볼 적은 사뭇 다르네. 이때 퍼뜩 무슨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마침 이날 충주로 오는 버스길에서 읽은 책에서 본 글발이다. 어쩔 수 없이 책에서 읽은 얘기를 곁들이는데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에 다음 두 글발이 또렷하게 가슴에 떠오른다.


ㄱ. 우리가 흔히 인용하듯이 모든 악의 근원은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사랑’이다. (브루스 바튼)

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디모테오 1서 6장 10절)


아, 그렇구나. ‘책’이 말썽이라기보다는 ‘책을 보는 마음’이 말썽이 되겠구나. 그렇지. 그런데 이오덕 어른은 왜 “책을 멀리하라, 읽지 마라” 같은 말씀을 숱하게 되풀이하셨을까? 찬찬히 헤아려 본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나날이 참된 마음을 잃기에, 또 참마음을 잃으면서 잃는 줄 모르기에, 또 책은 손에 쥐기는 하지만 정작 책을 책대로 즐기거나 나눌 줄을 모르기에, 책을 가려서 볼 줄 아는 눈이나 마음이 차츰차츰 흐릿해지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 엉뚱한 책을 읽으면 마음이 더럽혀지기 쉽다. 짓궂은 책에 푹 빠져 사람답게 사는 일과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고. 그러나 책이 엉뚱하거나 짓궂기 때문이라기보다, 책을 마주하는 우리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은 탓에 쉽게 휘둘리고, 글에만 빠져서 몸은 못 움직이는 얼개가 되지 싶다. 이오덕 어른은 우리가 스스로 제결을 잃지 않으면서 마음을 가꾸고 일을 하며 오늘 이 삶을 튼튼히 보듬으라는 뜻으로 “책을 읽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지 싶다. 그렇게 마음을 가꾸면 굳이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름답고 올바른 책을 찬찬히 살피고 찾아내어 즐길 수 있고, 책에만 푹 빠진 채 이론만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 몸을 가꿀 수 있을 테니까. 책 한 자락을 읽어 얻은 모든 것으로 제 삶길하고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보듬는 마음하고 몸짓을 다질 수도 있을 테고. 이오덕 어른은 우리들 갇힌 울타리를 보고, 가장 손쉬운 일, “일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쓸 말다운 말을 잃는다. 말썽 많고 아주 나쁜 말씨나 말밭에 너무 쉽게 길들고 물든다. 그러니 이런 뿌리가 되는 ‘얄궂은 말이 가득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스스로 말다운 말을 잃고 생각마저 비뚤어지지 말기를 바라셨지 싶다. 마지막으로, 이런 여러 가지는 말로 아무리 가르쳐 보아야 쉬 받아들여 배우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지 싶다. “책을 읽는 마음을 먼저 바르게 세우는 일이 참 크”지만, 그 큰자리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느껴서 살아갈 만한 뒷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셨지 싶다. 그리고 책을 가까이하는 뒷사람이 “일하는 사람”하고 자꾸 동떨어지면서 엉뚱한 길로 빠지고 마니까,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다고도 본다. 책은 언제든지 읽을 수 있으니,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돌아보면서 깨닫길 바라셨겠지. 책을 읽는 마음을 먼저 제대로 슬기롭게 사랑으로 즐겁게 세워야, 책 한 자락을 읽든 백만 자락을 읽든 하나하나 한결같이 잘 곰삭여서 제 살림꽃으로 삼아 온눌에 다시 펼칠 수 있다고 보신 이오덕 어른이리라. 그렇지만 책을 읽는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길가에 자라는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마구 짓밟거나 꺾을 수 있다. 가난하고 힘든 이를 ‘말로는’ 돕자고 할 수 있으나 정작 제 주머니를 덜어서 나누거나 제 몸을 내맡겨 ‘자원봉사’를 하지는 않기 일쑤이잖은가. 그래서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이 되어, “말보다는 삶”으로 일어서기를 바라셨고, 이렇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몸짓하고 마음이 제대로 서야 ‘책을 읽을 자리’에 스스로 선다고 보셨지 싶다. 2004.5.1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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