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니까
어느 출판사이든 이오덕 어른 책을 내고파하는 곳에서는 이오덕 어른 책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 보기로는 이오덕 어른 책을 내도 좋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참 적다. 그 까닭은, 이오덕 어른 책으로 “돈이 될” 수 있고, “팔릴 만”하고, “장사가 되기 때문”인 생각을 넘어서면서 책을 내려는 곳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이오덕 어른이 왜 그렇게 교육자란 한길을 살아오셨고, 교육자로 살면서 이녁 학교 아이들만 가르치려 하지 않았는지, 또 웬 글은 그렇게도 많이 쓰셨는지, 또 아이들한테 왜 그리도 ‘글쓰기’를 시키고 ‘그림그리기’를 시키셨는지, 나아가 그렇게 쓴 글과 그림을 왜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장 알뜰한 사랑으로 여겨서 간직하셨는지를 헤아리는 출판사가 없어 보인다. 이 모두를 헤아릴 수 없는 출판사 사람들하고는 말이 되지 않더라. 말이 안 되니, 그런 사람들이 이오덕 어른 책을 내려고 품는 마음이 깨끗할 수 없겠지. 그분들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말한다. 올바르다고 말한다. 이오덕 어른 뜻을 따르고 지키고 잇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오덕 어른 뜻 가운데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으려는지는 말하지 않네? ‘따른다·지킨다·잇는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따르고 지키고 이으려는지를 똑부러지게, 똑똑히, 낱낱이, 차근차근 말하거나 밝히면서 이곳 충주 무너미를 찾아오는 출판사 사람은 아직까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오덕 어른 책을 내자면 ‘이오덕’만 알아서는 안 된다. 어른하고 가장 오래고 살가운 동무인 ‘권정생’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권정생’만 알면 되는가? 아니다. 권정생 어른하고 가장 오랜 동무이자 가장 살가운 벗인 이웃사람, 바로 가난하고 힘없고 이름도 없지만 온삶을 이 땅에서 조촐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흙지기랑 아이들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어야지. 이뿐 아니라, 두 어른이 끔찍하게도 아끼고 돌보고 사랑한 풀과 나무와 꽃과 새와 벌레와 하늘과 구름과 물과 해와 모든 목숨붙이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테고. 어느 한 가지만 있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모든 숨결이 차근차근 어우러지면서 한동아리로 엮여 나갈 수 있어야 비로소 이오덕 어른 책을 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몸짓이자 마음인 출판사라면 구태여 이오덕 어른 책을 내지 않아도, “이오덕 어른 뜻을 따르고 지키고 이으며” 아름답고 살가운 책일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스스로 아름다우면 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 무너미에서 책마을이 돌아가는 모습을 아주 꼼꼼하게 살핀다. 이오덕 어른 책을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에서 낸 책 가운데 하나라도 흐트러지거나 어긋나거나 어이없거나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길과는 다른, 비틀린 책을 한 자락이라도 낸 출판사하고는 이오덕 어른 책을 계약해서 내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여긴다. 좀 지나쳐 보이나? 지나쳐 보여도 좋다. 고갱이는 쉽다. “이오덕 책을 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 삶터를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꾸면서, 이 땅을 제대로 돌보고 돌아볼 수 있느냐이다. 이러면서 어린이와 모든 목숨붙이를 사랑할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느냐이다. 이런 마음이 없이 책을 내는 출판사라면 모두 거짓말쟁이. 속임쟁이. 그저 책으로 돈만 벌려는 장사치일 뿐. 2004.6.1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