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짐 1
헌책집 아저씨가 책짐을 손수 꾸려서 자리를 옮기신다. “제가 뭣 좀 도울 일이 없을까요?” 하고 여쭈니 “아니야. 마음만 받을게. 책짐은 다른 사람이 도우면 안 돼. 이 책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스스로 옮겨야 해. 스스로 옮기지 못한다면 그때에는 이 책짐을 안고 살 수 없다는 뜻이야. 자네는 책짐을 어떻게 꾸리고 책꽂이를 어떻게 빼내고, 이 짐을 어떻게 나르는가를 지켜보게. 어디에서도 이 만한 가르침은 받을 수 없을걸?” 책집지기 아저씨는 매우 잽싸면서 야무진 손길로 어느새 책꽂이를 다 비우셨고, 책꽂이도 다 뜯어낸다. “책꽂이는 말이야, 돈이 들어도 가장 좋은 나무를 써야 해. 자 보게. 좋은 나무로 짰기 때문에 이렇게 떼어내어 새곳에 다시 붙여도 튼튼하지. 나무가 하나도 안 휘어졌지?” 헌책집 살림을 스무 해 넘게 하신 아저씨는 한나절이 안 되어 혼자 책집 한 칸을 고스란히 옮겼다. “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책정리는 오늘 못하나? 뭐, 오늘은 쉬지. 내일 하면 되지.” 헌책집 아저씨는 ‘책 묶는 십자매듭’하고 ‘책덩이에 어떻게 손가락을 끼워서 몇 덩이를 한꺼번에 나르는가’하고 ‘책덩이를 짐차에 차곡차곡 쌓는 매무새’하고 ‘책꽂이 뜯기 + 뜯은 책꽂이 새로 짜서 붙이기’를 한나절에 낱낱이 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1999.9.15.
책짐 2
《달팽이 과학동화》 마흔 권을 담은 전집상자를 등짐으로 나른다. 상자로 담은 책을 등짐으로 어찌 나르는가는 출판사 짐만 옮기는 일을 하는 분들이 알려주었다. 이분들은 책을 등짐으로 나르는 연장도 손수 짜서 쓴단다. 책등짐에 쓰는 책지게는 가냘픈 가로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위로 길쭉은 널빤인데, 가냘파 보이는 가로대에 책덩이 하나를 놓으면, 이 책덩이에 다른 책덩이를 서넛쯤 거뜬히 올려서 가볍게 나를 만하단다. 이분들이 등짐 나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책지게 없이 어떻게 등짐을 날라야 좋을까를 배운다. 하루는 마흔 권들이 전집상자 200 꾸러미를 등짐으로 계단을 타고 땅밑으로 날라야 하는데,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안 나온다. 혼자 네 상자씩 등짐으로 계단을 날듯이 오르내린다. 두 시간 즈음 헉헉대며 오르내려서 다 옮기니 그제서야 끌신을 직직 끌면서 한 사람이 기웃거리더니 “어머, 다 날랐어? 혼자?” 하고 묻는다. 힘들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아무 말이 안 나왔다. 2000.5.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