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람

‘우리말 소식지’하고 ‘헌책방 소식지’를 주마다 서너 가지씩 혼자 엮어서 써내고, 이를 복사해서 돌리니, 둘레에서 놀란다. 어떻게 주마다 서너 가지 소식지를 혼자 다 쓸 수 있느냔다. 나는 외려 더 놀란다. 왜 그렇게 못 할까?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못 한다고 여기니 끝내 못 할 뿐이지 않을까? 누가 나더러 소식지를 내라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써야겠다고 여겨서 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다기보다 마음에서 저절로 솟구쳐오른다. 그렇다고 솟구쳐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써내지는 않는다. 글만 쓸 수 없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신문을 다 돌리면 지국 식구들 먹을 밥을 지어서 차리고, 신문 돌리며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을 빨래하고, 이웃 지국하고 주고받은 열 가지 아침신문을 샅샅이 읽으면서 신문글 오려모으기를 하고, 자전거 타고 헌책집에 가서 책을 읽는다. 낮에는 신문값 걷으러 다닌다. 저녁에는 대학교 셈틀칸으로 찾아가서 열 시에 문을 닫기 앞서까지 신나게 글을 쓴다. 놀랄 일이란 없다. 하루를 쪼갤 마음이 있으면 틈이 생긴다. 이렇게 스스로 지은 틈에 스스로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쓸거리가 차고 넘친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글로 옮기고 싶은 몇 가지를 고른다. 우리는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글을 못 쓸 뿐이다. 1998.3.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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