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다녀오겠다는 바보짓



아이들하고 쓸 글살림을 챙기려고 순천마실을 합니다. 고흥에서는 문방구가 읍내에 두 곳 있으나 저희가 바라는 글살림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순천에는 꽤 큰 문방구가 있어서 찾아가 보는데, 한숨이 절로 나와요. 잘못 생각했군요. 요새는 문방구에 찾아갈 노릇이 아니라, 집에서 누리집을 뒤져 장만해야 할 노릇이로군요. 찻삯하고 품을 들여서 도시에 있는 큰 문방구에 가 본들, 사람들이 자주 찾거나 많이 사는 것만 들여놓을 뿐, 요모조모 헤아려서 갖추려 하는 글살림은 찾을 길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큰책집도 엇비슷합니다. 큰책집이라 해서 갖은 책을 두루 갖추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싶은 책을 더 갖추려 하고, 잘 팔린다 싶은 책을 넓게 둡니다. 여러 갈래에서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을 온갖 책을 두루 갖추려 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나라 곳곳에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집은 어떤 책을 갖출까요? 잘 팔릴 만한 책을 둔대서 잘못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잘 팔리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살림은 무척 좋다고 여깁니다.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즐겁게 삶을 북돋아 슬기로이 어깨동무할 뿐 아니라, 스스로 숲바람이 되도록 넌지시 일깨우는 책을 살뜰히 알아보고서 곱다시 갖출 수 있다면, 더없이 빛나는 책집이 되리라 느껴요. 그냥저냥 읽을거리를 한켠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저냥 읽을거리만 둘 적에는 책집이 아닙니다. 책집은 사뭇 다른 곳입니다. 숲을 종이로 옮긴 곳이 책집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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