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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 ㅣ 생각하는 숲 7
타카도노 호오코 지음, 이이노 카즈요시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맑은책시렁 191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
다카도노 호오코 글
이이노 카즈요시 그림
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2003.7.15.
유령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그야 물론 둥둥 떠다니지요. 나는 유령이니까요. 그러면서 집안에 쌓인 공기를 휘젓는답니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집에는 진지한 공기가 금방금방 쌓이거든요. 진지한 공기는 날마다 적당히 풀어 주지 않으면 점점 굳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진지한 성격이 자꾸만 뒤틀리고 비꼬여, 결국에는 뒤틀린 화석 같은 고집불통이 되어 버리죠.” (13쪽)
“함께 봐 드리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밤중에 유령과 나란히 앉아 무서운 영화를 보는 상상을 하자, 이번에는 등골이 오싹했다. 어쨌거나 유령은 무서운 악당 정도가 아니라 진짜 유령이었으니까. (34쪽)
둘은 때때로 회사 이야기를 했다. 세상 밖으로 나간 덕분에 유령의 세계가 넓어지기도 했지만,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크게 줄어든 진지한 씨도 예전보다 더 세상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75쪽)
설날을 앞둔 저녁 여덟 시 즈음, 시골 밤하늘을 가르는 폭죽이 있습니다. 시끌벅적하게 터지는 소리에, 화약 냄새하고 연기에, 또 번쩍거리는 불빛에 어수선하고 귀가 아픕니다. 해마다 한가위하고 설이면, 서울에서 시골로 온 사람들이 아이들하고 폭죽질을 하기 일쑤입니다.
저녁 여덟 시라는 때라면 시골에서는 잠자리에 들며 고요합니다. 서울사람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놀랄 테지만, 시골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저녁 여덟아홉 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새벽 서너 시나 너덧 시라면 하루를 열어요.
그나저나 서울에서는 마을 한복판에서 폭죽질을 하는지요? 서울에서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폭죽질을 해도 되는지요? 서울에 있는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놀아도 되는지요?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다카도노 호오코/이선아, 시공주니어, 2003)은 얌전하거나 반듯한 길만 걸어왔다는 ‘진지한’이란 아저씨가 어느 날 도깨비를 맞닥뜨리면서 달라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놀 줄을 모르고, 우스개를 말할 줄도 모르는 진지한 아저씨는 언제나 빈틈없는 모습일 뿐 아니라, 모든 일을 딱딱 맞추어 제때에 마치고, 누구하고도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도깨비를 만나는데, 도깨비는 진지한 아저씨가 너무 재미없습니다.
바라지도 않는데 불쑥 찾아온 도깨비일 수 있습니다. 바라지도 않는데 밤이면 밤마다 찾아와서 말벗이나 놀이벗이 되기를 바라는 도깨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아저씨 마음 한켠에는 시원스레 터놓는 말이나 활짝 웃음꽃 터뜨리는 놀이를 하고픈 뜻이 있었는지 몰라요. 이 마음이 도깨비 모습으로 나타났을 수 있어요.
고요한 시골 밤을 어지럽히는 서울내기 폭죽질이란, 놀이가 아닙니다. 놀 줄 모르니 하는 짓이지요. 놀 줄 안다면, 맨눈으로도 미리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골에 망원경을 들고 찾아왔겠지요. 망원경으로 미리내를 더 환하게 바라보면서 별잔치를 누리고 고요잔치를 맛보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