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목수일기
- 글쓴이 : 김진송(목수 김씨)
- 펴낸곳 : 웅진닷컴(2001.7.10.)
- 책값 : 8000원


 학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착한 일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착한 일’을 권리로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힘없는 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착한 일은 언제가 가로막힙니다. 재개발을 한다는 마을마다 ‘그곳에 있던 집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으레 있으나, 이런 나무를 사랑하며 돌보고 싶은 착한 마음은 언제나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 버립니다. 큰나무를 파서 옮기자면 500만 원도 넘게 들지만, 새로 사서 심으면 5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하면서.

 힘없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을 돕자는 착한 마음도 언제나 날벼락을 맞습니다. 철거를 맡은 깡패들은 ‘위에서 시킨 일’이라 하고, 위에서는 ‘법으로 떳떳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날이 줄어드는 지구자원을 걱정하면서 자전거로 거리를 오가면, 한결같이 자동차 배기가스 세례를 받고 시끄러운 빵빵거림을 받습니다. 자동차마다 자전거를 길섶으로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곤 합니다. 정작 지구자원을 펑펑 써대는 자동차는 ‘석유든 석탄이든 다른 지하자원이든 바닥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조차 안 합니다. 자전거 타거나 걷는 사람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착한 마음은 언제나 콜록콜록 아찔아찔입니다.


.. 도시계획과 도로개발 과정의 기획안에는 땅값의 배상 이외에는 주거인들에 대한 어떤 것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전유한 공간에서 살 권리가 인정되거나 그것을 배려한 정책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그런 법조항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발에 관한 한 무제한의 독재가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 농촌인 것이다. 따라서 만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수십 년을 가꾸었다고 해도, 어느 날 산을 뚫어버리며 쳐들어오는 도로와 갑자기 만들어지는 댐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  〈273∼274쪽〉


 저는 아직 시골에 몸을 붙이고 있지만, 이곳에 얼마나 오래 몸을 붙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땅임자는 땅을 팔아 전원주택 짓거나 인삼밭을 가꿉니다. 산임자는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고 공장을 들여놓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도시에 깃든들 뾰족한 수가 없고, 시골에 뿌리박는들 다른 수가 없습니다. 땅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떠돌이 신세입니다. 찻길도 놓고 공장도 세우고 짐승우리도 갖춰야 하니 자꾸자꾸 쫓겨납니다. 전세값 높이고 재개발을 하고 뭐를 뭐를 짓는다고 하니 자꾸만 밀려납니다.


.. 땡볕에 군인들 몇 중대가 동원되고 포크레인이며 트럭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일하는 모양새가 영 마뜩찮던 중이었다. 개울물이 도로를 휘돌아서 아스팔트가 다 벗겨지고 콘크리트 밑의 흙도 다 휩쓸려 내려가, 공중에 콘크리트만 덜렁 들려 있는 곳이 그들의 작업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긴급 복구공사지만,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를 무너뜨리고 흙을 다져넣는 게 아니라 동굴처럼 보이는 앞부분만 흙으로 메우고 있었다. 마침 어제는 흙을 가득 실은 복구차량이 그 위를 지나다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려 전복되어 버렸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저 흙더미만 대충 메우는 일품새를 보니, 차라리 수해복군지 뭔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44∼45쪽〉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가르친 ‘착한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데 눈길 두지 말고 시험공부 잘해서 일류대학에 붙은 다음, 자격증 몇 가지와 운전면허증 따서 큰기업에 일자리 얻고, 좋은 신랑신부감 만나 하루빨리 시집장가 가서 애 쑥쑥 낳고 세금 잘 내는 일등시민 되라는 것? ‘어떤 사람을 찍을지는 알 수 없어’도 투표하는 날은 빠짐없이 투표하라는 것? 무엇이 쓰레기로 버려지는지는 따질 것 없이 ‘쓰레기 잘 줍는 일’? 아직까지도 서울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간첩신고 알뜰히 하는 일?

 우리가 사회살이를 하며 할 수 있는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나라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 행정관청에서 하라는 일은 두말 없이 받아들이기? 나이 많이 잡수신 어르신 말씀 고개숙여 잘 듣기? 신문과 방송에서 수없이 흘려보내는 소식을 비판없이 그대로 새겨듣기?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 월급 주고 일 시키는 회사가 얼마나 고마웁냐고, 이런 회사에 반기를 들며 교통정체 일으키는 데모하지 말고 야근이나 잘하기?


.. 도무지 엄나무를 제대로 자라게 놔두는 법이 없다. 몸에 좋다고 껍질을 벗겨 약으로 쓰거나, 엄나무닭 백숙이라고 하여 닭국에 넣어 삶아먹는지라 남아나는 게 없다. 큰 엄나무가 방골내미 뒷산에도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도 한 해 전에 누군가가 뎅겅 잘라가 버렸다 ..  〈78∼79쪽〉


 목수 김씨(김진송)가 쓴 《목수일기》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쟁이 이야기만 쓰는 줄 알고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었으나, 가만가만 읽노라니 나무질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만난 나무 이야기, 자기가 만난 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있으며 괴롭게 살아가는지 하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또한 자기가 나무를 만지며 살아가는 터전이 얼마나 팍팍해지고 있는지, 자기 또한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는 시골땅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숨김없이 털어놓습니다. 반갑군요. 이렇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간직하고 있으니. 하지만 슬프군요. 나무며 사람이며 우리 삶터며 된통 뒤죽박죽이 된 채 어둡고 슬프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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