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25. 른
새벽바람으로 마을에서 고흥읍으로, 고흥읍에서 순천으로, 순천에서 기차로 갈아타고서 수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저녁에 서울에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했는데, 서울에 닿기 앞서 살짝 틈을 낼 만하구나 싶어서 수원나루에서 기차를 내린 뒤에 이곳에 있는 마을책집 한 곳을 거치려고 해요. 처음 찾아가는 곳인데 어떤 책빛이 반길지 가만히 그리면서 글을 짓습니다. 아른아른 생각을 기울여 ‘른’으로 첫머리를 풀려 하니, 지난 이레 동안 매우 부산스레 일손을 잡은 일이 떠올라 까무룩 곯아떨어져서 나른하군요. 곁님이 서른 즈음에 큰아이를 낳았지 싶고, 우리가 꿈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길은 참으로 바른 몸짓이지 싶어요. ‘바르다’고 할 적에는 반듯반듯을 나타내기도 하겠지만, 다른 데를 기웃거리지 않고 우리 마음을 헤아리면서 씩씩하다는 결도 나타낸다고 느껴요. 오른쪽이 아니나 왼쪽도 아닌, 오롯이 숲바람 같은 흐름으로 살림길을 고릅니다. 차근차근 힘을 기르고, 어두운 밤을 고요히 불빛으로 사르면서, 옷 한 벌을 살뜰히 지으려고 천을 마를 줄 아는 몸짓이고 싶어요. 나이 아닌 철이 드는 어른이 되려 합니다. 빠른 걸음도 느린 걸음도 아닌 우리 걸음으로 한 발짝씩 딛으려고 합니다. 어른이란, 어린이 티를 벗은 사람이 아니라, 그야말로 철을 오롯이 헤아리고 익혀서 슬기로운 사랑으로 삶을 짓는 이슬떨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른
곁에 없어도 느껴 아른
오늘은 힘이 빠져 나른
어머니 나를 낳은 서른
꿈을 보고 걸으며 바른
오른이 옳은을 가리킨다면
왼은 무엇을 가리킬까
푸른이 풀을 나타낸다면
파란은 어떤 길 나타낼까
꼭 하나 누리려고 고른
따스히 돌보는 마음으로 기른
불빛으로 밝게 사른
곱게 옷을 지으려고 마른
나이는 들었어도 참하지 않은
빠른 걸음은 안 할래
철철이 기쁘게 배우는
철든 어른이라면 반가워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