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13. 말씀
다달이 빨래터랑 샘터로 걸음을 합니다. ‘빨래터걸음’이란,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하고 샘터에 낀 물이끼를 걷어내는 마실입니다. 이를 두고 마을 어르신은 ‘샘 청소’라고들 말씀합니다. 저는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들어 살면서 그때부터 빨래터걸음을 잇습니다. 그해부터 여러 해는 언제나 저 혼자 솔질을 해서 물이끼를 벗기고 걷어낸 뒤에 우리 집 두 아이가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했고, 요즈막은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아버지 곁에서 함께 물이끼를 걷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저희 신을 이 빨래터에서 손수 빨아요. 마을 어르신은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를 거들어 물이끼를 걷거나 저희 신을 스스로 빨래할 적에 돌담 너머로 건너다보시면서 말씀합니다. “아이고, 이를 고마워서 워쩌나. 샘터를 깨끗이 치워 주네. 복 받으실 거요. 용왕님이 다 지켜보실 거요. 암.” 빨래터 물이끼를 걷을 뿐인데 ‘용왕님이 지켜보’시고 ‘복을 받는’다고 하셔서 한동안 아리송했습니다. 이 작은 빨래터하고 용왕님은 무슨 사이? 그러나 마을 뒷메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고스란히 솟는 이 빨래터하고 샘터는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이기도 할 테니, 이 물살을 타고 바다밑 미르님한테도 이야기가 가 닿을 만하겠다고 어림해 봅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아니, 마을 할매하고 할배가 말끝에 붙이는 한 마디 ‘암’, 그렇겠지요. ‘암’이란 한 마디는 전라말이 아니고 온나라에서 두루 쓰는 말일 텐데, 이 한 마디가 흘러나올 적에는 언제나 상냥하면서 따사로운 바람이 일렁이지 싶습니다. 고운 말씀을 여는 한 마디로, 고운 말씀을 마무르는 한 마디인 ‘암’입니다. ㅅㄴㄹ
말씀
한 땀 두 땀 엮어
옷 한 벌 지으니
여름내 시원하고
겨우내 따뜻한 살림
세 그릇 네 접시 담아
밥 한 끼니 차리니
아침에 넉넉하고
저녁에 푸짐한 하루
다섯 톨 열 알 심어
밭 한 뙈기 일구니
보금자리 알뜰하고
곳간이 살뜰한 갈무리
손수 지은 살림 듣고
몸소 차린 하루 나누고
같이 일궈 갈무리하는
어른들 말씀 배운다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