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8. 헌책
헌책집을 1992년부터 다녔습니다. 이해랑 이듬해에는 거의 인천 헌책집만 다녔고, 1994년부터는 서울 헌책집을 두루 누볐습니다. 저는 1992년에 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집 한 곳에서 책에 눈을 뜨는 놀랍고 기쁜 빛을 보았다면, 1994년에 서울 곳곳에 가득한 헌책집을 두루 누비면서 새롭고 즐거운 꿈을 보았습니다. 2018년 11월 4일에 서울 신촌에 있는 〈글벗서점〉에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합니다. 〈글벗서점〉은 1994년부터 드나들었습니다. 헌책집 아이들이 올망졸망 크는 모습을 그무렵에 살짝 엿보았고, 어느새 어른으로 큰 헌책집 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 일손을 거드는 씩씩한 손길에서 대견한 빛을 느꼈습니다. 이리하여 제 마음에서 한 가닥 가늘면서 단단한 끈 같은 노래가 흐릅니다. ‘헌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노래가, 책이란 무엇이며, 책을 마주하는 손길하고 눈망울이란 무엇인가 하는 노래가 살몃살몃 흐릅니다. 제 삶에서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문득 만난 헌책집이 있었기에 저는 토막마음이 아닌 온마음으로 삶을 바라보는 길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애써 들어간 대학교를 그만두자는 마음을 씩씩하게 품은 까닭도 그래요. 한국에서 대학교가 젊은이를 못 가르쳐도 헌책집이 가르쳐 주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책으로만 배우지 않습니다. 새책으로만 배우지도 않아요. 모든 책으로 배우고, 낡은 책을 손질하고 다듬어서 새롭게 꽃피우는 헌책집 일꾼 마음을 배웁니다. 헌책집을 드나들면서 책집이란 나무가 도시에서도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줄 배웠어요. ㅅㄴㄹ
헌책
헌책집에 가기 앞서까지
헌책이 있는 줄
까맣게 몰랐지만
헌옷 헌집은 알았지
헌옷을 손질해 물려입고
헌집을 고쳐 새로 사니까
헌책을 닦고 매만져
새책으로 나누겠지
나한테는 똑같은 책
펴서 읽으면 같은 줄거리
나로서는 새로운 책
새책도 헌책도 모두 첫책이야
아직 모르는 얘기를 배워
이웃 손길을 함께 느껴
오래되면서 새로 태어난
깊은 책나라로 날아올라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