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책 새론책



  묵은똥을 누어야 새론밥을 먹습니다. 묵은똥을 내보내지 않으면 속이 더부룩한 나머지 무엇을 먹더라도 아무 맛을 못 느낄 뿐 아니라, 먹는 기쁨도 못 누립니다. 묵은앎을 씻어야 새론앎을 받아들입니다. 묵은앎이 가득한 채로 산다면 아무리 새로운 삶과 살림을 바탕으로 빚은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곁에 흐르더라도 어느 하나 못 받아들이는 고리타분한 몸짓이 됩니다. 묵은책을 책시렁에서 치워야 새론책을 맞아들입니다. 책시렁에 묵은책이 가득해서 짓누른다면 어마어마한 깊이와 너비를 드러내어 우리 삶과 살림에 새로 사랑을 북돋우는 책을 만났더라도 선뜻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묵은똥이나 묵은앎이나 묵은책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묵은똥이 돌아갈 흙을 찾아서 묵은똥이 흙에 깃들어 새흙이 되도록 하면 되어요. 묵은앎은 글로 적어 놓고서 우리가 지나온 발자국을 되새기는 배움길로 삼으면 되어요. 묵은책은 우리 책숲집을 마련해서 고이 모셔 놓고서 이 묵은책을 되읽고 싶을 적에 얼마든지 되읽으면 될 뿐 아니라, 우리 뒷사람이 이 묵은책으로 새길을 찾거나 배우고 싶을 적에 물려주거나 헌책집에 내놓으면 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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