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1. 발
한글날을 앞둔 10월 8일에 경기 고양시까지 마실을 했습니다. 이곳에 교육방송이 있고, 교육방송 라디오에 나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했어요. 일을 다 마치고 고양시에서 택시를 불러 서울로 가려 했는데, 부름택시는 오지 않고 길에서 택시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부름택시는 곧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30분 넘도록 뒷말이 없습니다. 안 되는구나 싶어 가까운 전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가는 길에 잡은 택시는 “이맘때에는 길이 막혀서 못 가요. 대중교통을 타시는 쪽이 빠릅니다.” 하는 말로 부르릉 떠납니다. 길이 막히든 말든, 길삯을 얼마를 치르든, 저로서는 몸을 더 느긋이 쉬면서 택시를 탈 생각이었으나, 택시일꾼은 저녁 여섯 시에 고양에서 서울로 안 가려 합니다. 이리하여 저는 꽤 오래 걸어서 주엽역에 닿았고, 전철을 타고 서울로 들어섰습니다. 이 하루를 누리면서 돌아보았어요. 오늘 이 하루는 나한테 어떤 뜻이요 보람인가 하고 짚기로 했습니다. 이러니 ‘발’이라는 낱말 하나가 가슴으로 옵니다. 밤 00시부터 고흥집에서 짐을 꾸리고 집안일을 건사했고, 아침 07시에 마을 앞을 지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고흥읍으로 가고, 시외버스를 갈아타서 순천으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용산역에 내린 뒤, 신촌에 있는 책집을 들러 책을 장만한 뒤에, 망원동에 있는 출판사에 들러 제가 쓴 사전 한 권을 얻어 방송국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지요. 하루 내내 못 쉬고 움직인 터라 발이 아파 택시를 타고 움직이려 했습니다만, 저녁나절에 바깥일을 마친 뒤에 발도 몸도 쉴 수 없어서 발가락이 살짝 부었습니다. 이리하여 다음 같은 시 열여섯 줄을 얻었어요. ㅅㄴㄹ
발
오래오래 걸어도
풀밭길은 발이 보송보송
숲길은 발이 푸릇푸릇
냇물길은 발이 시원시원
살짝살짝 걷지만
시멘트길은 발이 따끔따끔
아스팔트길은 발이 뜨끈뜨끈
서울에서는 맨발이 힘들어
우리 발은
어느 길을 좋아할까
어떤 길바닥을 반길까
어디에서 기운이 날까
발바닥을 주무른다
발가락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오늘 하루도
씩씩히 걸어 주어 고마워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