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 성서에 생애를 바친 개혁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0
도쿠젠 요시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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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1


《마르틴 루터》

 도쿠젠 요시카즈 글

 김진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8.8.15.



루터에게 성서 강의란 성서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학생들과 나누는 활동이었다. 종교개혁이란 기본적으로 ‘성서를 읽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즉 성서를 혼자서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두와 함께 읽고,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모두와 함께 나눠 나가는 운동이다. (70쪽)


루터라는 이름이 그의 내부에서는 ‘자유로운 종’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지니는 독일어 이름으로 인식됐던 듯하다. (112쪽)


루터의 관심 대상은 성서의 문자와 어구를 얼마나 세밀하게 다루느냐가 아니라 성서에 담긴 신의 은혜로운 말, 즉 복음이었다. 복음을 독일어로 독일사람들의 마음에 닿도록 전하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123쪽)


찬송가는 그리스도교 예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문화를 만든 것이 루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민중들까지도 종교개혁의 신앙과 사상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외워 부름으로써 종교개혁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175쪽)



  오늘날 사람들은 너나없이 제 나라 말로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자 말하고 권력자 아닌 사람들 말이 달랐어요. 손전화로도 셈틀로도 누리그물로도 저마다 제 나라 말로 즐겁게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도 너나없이 나눌 말이 아닌, 권력자나 지식인 사이에서만 흐르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전문말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버젓이 퍼지기도 합니다. 신문·방송이라든지 인문책이나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 교과서에 바로 ‘여느 자리에서 나누는 말하고 동떨어진 권력자 말’이 있어요.


  《마르틴 루터》(도쿠젠 요시카즈/김진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8)를 읽으면서 말과 책과 삶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마르틴 루터라고 하는 독일사람이 한 여러 가지 일은 ‘말과 책과 삶’이 권력에 짓눌리거나 얽매이지 않도록 풀어내려고 하는 몸짓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비록 때로는 마르틴 루터라는 분 스스로도 권력자 자리에 서기도 했다지만, 교회 권력을 허물어 ‘말하는 사람이 말로 삶을 짓는 즐거움’을 넉넉히 누리도록 하는 징검다리를 놓았지 싶어요.


  지난날 유럽에서 성서를 바로잡는 일이란 사회하고 정치하고 교육까지 통째로 바로잡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성서를 바로잡는 일이란 ‘말을 바로잡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로서는 교과서를 교과서답게, 사전을 사전답게, 책을 책답게, 신문을 신문답게 바로잡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권력자하고 지식인하고 서울이 거머쥔 아귀힘을 몽땅 풀어헤쳐서, 문턱도 배움끈도 자격증도 양복도 학번도 없앤 홀가분한 나눔터를 가꿀 수 있습니다.


  문학이나 문학비평이 어려운 말이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인문책이나 인문강의를 어려운 말로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삶자리를 새로 짓고, 아름답고 즐거운 삶자리에서 말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할 노릇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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