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이야



글을 쓰기 앞서 멈춘다. 글을 쓰려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몸뚱이인가 아닌가? 나는 마음인가 아닌가? 나는 넋인가 아닌가? 나는 숨결인가 아닌가? 나는 이 모두인가 어느 한 토막인가? 살아서 움직이거나 곯아떨어져서 쓰러지는 몸을 놓고서 나라 할 만한가? 신나거나 기쁜 마음, 또는 슬프거나 궂은 마음을 나라고 해도 될까? 무엇이 나일까? 이러다가 몸을 살짝 헤아리는데, 누구라도 몸은 거의 다 물로 이루어진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풀벌레나 풀이나 나무도, 몸은 으레 물덩이라 할 수 있다. 애벌레가 나비로 깨어나든, 거미가 허물을 벗고서 더 커다란 몸뚱이가 되든, 고치라든지 허물을 들여다보면 옛몸이 녹고서 남은 물이 방울져서 맺히기 일쑤이다. 우리는 언제나 물에서 물로 옮기는 몸이라 할 만하다. 웃으면서 마주할 적에는 웃음이 서리는 물, 슬퍼서 눈물이 흐를 적에는 눈물이 감도는 물이다. 하늘이 파라면 물빛이 파랗고, 하늘이 잿빛이면 물빛이 잿빛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글이란, 물 같은 우리 몸이나 마음이나 넋으로 쓰는 글인 셈이다. 우리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우리 손끝에서 태어나는 글이 달라진다. 글솜씨가 아닌 마음으로, 숨결로, 넋으로 새롭게 쓰는 글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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