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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인문책시렁 11
《문주반생기》
양주동
최측의농간
2017.12.6.
밤에는 어머니가 가르치는 《대학》을 따라 읽기는 하였으나, 자리에 누우면 생각은 언제나 신소설에 잠겼었다. (31쪽)
내가 맨 처음 서양문자를 본 것은 그보다는 좀 앞서 성냥갑엔가에 인쇄되어 있는 “TRADE MARK”란 문자였다고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이 괴상한 가로 쓴 글자가 대체 무슨 글자인기 그 말뜻이 무엇인지를 기어이 알고 싶어 예의 주설의 사숙자요, 개화 지식인인 C 선생을 찾아가 물었더니, (53쪽)
그(이장희)가 술도 마실 줄 모르면서 우리 주당 동인들을 늘 따라다니다가 안주만 많이 집어먹는다고 주로 옹군에게 몹시 핀잔을 받으며, 심지어 모자를 벗겨 땅에 굴려도 그저 빙그레 고운 미소만 띄던 얼굴, (107쪽)
“한 달쯤이면 얼른 졸업하고 꼭 돌려드리지요.” 하는 내 송구스러운 말에 그(최남선)는 예의 그 가느다란 눈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아무 때나 괜찮으니, 천천히 참고하세요.” 하였다. 내가 몹시 감격되어 두 번 절하고 나왔다. (197쪽)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 한 줄은 어느 한 사람이 품은 생각을 바탕으로 어떠한 길을 새로 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어느 한 사람을 새삼스레 만날 수 있기도 하고, 이이를 둘러싼 여러 사람을 뜻밖에 마주하기도 합니다.
《문주반생기》(양주동, 최측의농간, 2017)를 읽으면서 양주동이라는 분을 새삼스레 만납니다. 그리고 양주동이라는 분이 살던 무렵, 한국과 일본 사이를 오가면서 글길이나 삶길을 밝힌 여러 사람을 뜻밖에 마주칩니다.
오늘 우리로서는 이미 떠나고 없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만, 이 글에서만큼은 모두 살아서 움직입니다. 글쓴이도 떠난 사람이요, 글쓴이하고 어울린 사람도 모두 떠나서 없지만, 이 책을 손에 쥐어 읽을 적에는 마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이분들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한문만 읽다가 한글을 만나는 이야기, 또 영어를 만나는 이야기, 또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배움길을 걷는 이야기, 이러면서 술고래처럼 지낸 이야기,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던 여러 글벗 이야기, 빈털터리가 되도록 마시고 부으면서 일제강점기라는 나날을 보낸 사람들 이야기, 얌전하고 말이 적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둘 마주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빛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하고 얽힌 사람들이 스스로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를 낱낱이 떠올려서 적바림한 사람이 있어, 오늘 우리는 어제오늘을 가로지르는 삶을 읽습니다.
한 눈으로만 보면 좁습니다. 두 눈으로 보기에 조금 더 넓습니다. 여러 눈으로 본다면, 또 마음을 활짝 연 새로운 눈으로까지 본다면, 이 땅에서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더 넉넉하면서 포근히 품어 볼 만하겠지요. 양주동 님이 쓴 《국문학고전독본》을 퍽 오랫동안 옆구리에 끼면서 읽은 적 있는데, 이 같은 책을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까지 가만히 돌아보았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