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58


 곁돈


  어릴 적에 어머니가 처음으로 ‘용돈’을 주실 적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런 돈을 왜 주시나 하고 여겼어요. 어머니는 저 스스로 돈살림을 꾸려 보라는 뜻이었을 테지요. 여덟 살이었다고 떠올리는데, 혼자 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니, 저한테 ‘용돈’을 주셔서, 이 돈으로 버스표를 끊어 혼자 씩씩하게 버스 일꾼한테 내밀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린이는 자라서 푸름이로 크고, 어느덧 어른이 되는데 어느 날 문득 ‘용돈’이란 낱말을 돌아봅니다. ‘용’이 뭔지 궁금했지요. 열 살 즈음이었을까, 어머니한테 여쭈니 “용돈? 쓸 돈이지, 쓰는 돈.”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用 + 돈’이요, 어머니 말씀처럼 ‘쓰다(쓸) + 돈’이더군요.


  이때에 매우 궁금했습니다. 쓰는 돈이라면 ‘쓰는돈’이라 하면 되고, 쓸 돈이라면 ‘쓸돈’이라 하면 되어요. 그런데 왜 한자 ‘用’을 넣어서 ‘쓰는돈·쓸돈’을 ‘용돈’으로 적어야 했을까요?


  한국말에 ‘도차지’가 있습니다. ‘도차지하다’라 말하면 거의 모든 이웃님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독차지하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독차지’는 ‘獨 + 차지’입니다. ‘도차지’를 어느 사전은 ‘都차지’로 적기도 합니다만, 이는 알맞지 않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한국말 ‘도맡다’에서 ‘도-’는 한자가 아니거든요. ‘도사리·도거리’처럼 ‘도-’를 넣은 낱말이나 ‘도드라지다’를 가만히 헤아리면 ‘도-’를 넣어서 ‘도맡다·도차지하다’를 비롯하여 ‘도살피다·도주다·도받다’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알맞게 쓸 만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결을 살피지 못하면 ‘獨 + 차지’나 ‘用 + 돈’ 같은 말을 좀 엉성히 쓰고 마는구나 싶어요. 더 헤아린다면 우리는 “용돈을 주다”라 하기보다는 “돈을 주다”라고만 하면 됩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쓸 돈”을 줄 적에 그냥 ‘돈’을 준다고 하면 되어요. 그리고 ‘살림돈’이나 ‘곁돈’처럼 살을 붙여 뜻을 더할 만합니다. 살림을 꾸리는 돈, 곁으로 쓰는 돈이란 뜻을 담지요. ‘곁-’을 붙인 ‘곁돈’처럼 ‘곁일·곁책·곁집·곁길’을 넉넉히 쓸 만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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