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지 않다면



  마을 앞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이 여느 날보다 더디면서 오래 걸린다. 이러면서 고흥읍에 07시 41분에 닿는다. 07시 40분에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놓치면서 09시 10분에 순천 기차역에서 탈 기차도 어그러진다. 천주머니에서 기차표를 꺼내어 살핀다. 어라, 기차때가 09시 10분이 아닌 06시 30분? 아니, 내 눈이 삐었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기차표를 잘못 끊어 두었다. 어쩌다가 09시 10분 아닌 06시 30분 표로 끊었을까? 코레일에 전화를 걸지만 전화를 안 받는다. 한숨을 쉬다가 택시가 떠오른다. 택시 기사님은 아침에 고흥서 순천까지 갈 수 있다고 말씀한다. 잘되었네. 장모님까지 다섯 사람이 택시에 탄다. 아이들이 아직 작아 뒤에 네 사람이 앉아도 안 좁다. 기사님 차도 제법 크구나 싶다. 버스때가 어그러지고 기차표를 잘못 끊었지만, 택시를 타고 고흥서 순천 기차역까지 가면서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힌다. 오늘 처음부터 택시를 불러 아예 훨씬 느긋하게 움직였다면 어떠했을까? 우리는 누구나 넉넉한 삶이요 살림이자 하루일 텐데, 이를 잊고 바쁘다고 여기거나 서두르면 어떤 일이 찾아들까? 오늘 새벽하고 아침 일을 맞아들이면서 새삼스레 되뇐다. 넉넉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아무 일을 못 할 뿐 아니라, 아무 글을 못 쓴다. 넉넉한 마음으로 하루를 다스릴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삶도 살림도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노래도, 여기에 글 한 줄도 넉넉히 쓰면서 기쁠 수 있다. 2018.7.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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