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려는 글쓰기



  나는 가난하게 살아 보았기 때문에 가난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가난하게 살 적에는 왜 가난한지를 모르는 채 ‘가난해야 넋을 맑게 다스리고 살림을 알맞게 가꾼다’고 여겼다. 가난해야 거짓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겉치레에 안 매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내고 보니 아니었다. 가난하지만 넋이 안 맑은 사람이 있고, 살림이 알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가멸찬 살림이면서 넋이 맑은 사람이 있으며, 살림이 알맞은 사람이 있다. 그러면 무엇인가? 언제나 마음 따라 움직이더라. 그래서 나는 가난을 떨치기로 했다. 그동안 ‘가난하려는 살림’이었으면, 앞으로는 ‘넉넉하려는 살림’을 꿈꾸면서 짓기로 했고, 이제는 ‘가멸차려는 살림’으로 거듭나자고 생각한다. 어떤 살림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넋을 맑게 다스릴 뿐 아니라 알맞고 즐거운 살림꽃을 피우려는 생각을 품으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엇 하려는 생각’으로 하루를 짓고 가꾸니, 시나브로 ‘무엇이 되는 길’을 걷더라. 다시 말하자면, 나는 예전에 ‘가난해야만 맑고 곧은 넋으로 살 수 있다’고 여겼기에 가난했다면, 이제는 ‘넉넉하면서 언제나 맑고 곧은 넋으로 살려 하’기에 이 모습으로 달라지고, 앞으로는 ‘가멸차면서 늘 맑고 곧은 넋으로 살며 나누려 하’이 이러한 결로 새로 달라지겠지. 그래서 글도 이와 같구나 싶다. 스스로 쓰려는 대로 쓴다. ‘나는 글을 참 못 쓰거든요’ 같은 말을 살짝이라도 입에 담거나 생각한다면 참말 이대로 글길을 걷는다. 말 한 마디뿐 아니라 생각 한 조각도 제대로 심어야 한다. 2018.7.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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