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나야 한다



  박살나야 비로소 머리를 연다. 수박을 쪼개지 않고는 먹을 수 없고, 단단히 굳은 머리를 깨지 않고는 새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굳은 머리에 가둔 낡은 이야기를 녹여야, 우리 머리에 새롭게 삶을 가꾸는 길을 슬기로이 다루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어느 책이든 읽으면 되지만 아무 책이나 읽지 말 노릇이다. 어느 글이든 읽어도 좋으나 아무 글이나 읽지 말 일이다. 스스로 가둔 낡은 생각을 언제나 새삼스레 박살내고서 어느 책이나 글이든 정갈히 다스린 마음으로 마주하면 된다. 놀라운 스승이나 빼어난 길잡이를 찾아나서지 않아도 된다. 모든 길은 스스로 연다. 놀라운 스승이 있어도 한 걸음 신나게 내딛지 않으면 덧없다. 빼어난 길잡이가 있어도 어깨동무를 하며 두 걸음 세 걸음 노래하면서 디디지 않으면 부질없다. “난 노래 못하는걸요”라든지 “난 춤 못 춰요” 같은 어리석은 옷은 집어치워야 한다. 다 박살내야 한다. 우리 가슴을 적시는 책이나 글을 누가 쓰는가? 스스로 가두었던 낡은 생각을 기쁘게 박살낸 사람이 책이나 글을 아름다이 써서 내놓아 준다. 그러면 우리는 아름다이 여민 책이나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후루룩 훑으면 될까? 아니지. 마음을 고요히 다스린 채 가장 맑고 사랑스러운 숨결로 마주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자란다. 아무렇게나 둔 마음으로 엉성하게 읽으려 한다면, 엄청난 책이든 대단한 책이든 모두 불쏘시개가 될 뿐이다. 불쏘시개 아닌 책을 읽겠다면, 책을 쥔 두 손이, 두 눈이, 두 마음이 오롯이 하나로 피어나서 기쁜 사랑으로 타오를 수 있어야 한다. 2018.7.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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