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만만한 만화방 1
김소희 지음 / 만만한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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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78



햇볕 안 드는 지하실에 달빛은 들까요?

― 반달

 김소희

 만만한책방

 2018.5.25.



여름 방학 중에 우리 집이 망하고, 아빠는 집을 나가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지하 술집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15∼16쪽)



  만화책 《반달》(김소희, 만만한책방, 2018)은 집안이 쫄딱 무너져서 술집 한구석에 있는 쪽창고로, 더욱이 햇볕이 들지 않는 땅밑 자리로 옮겨서 살아야 한 어린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80년대 한복판을 어린이로 살았던 만화가 김소희 님은 갑작스레 집안이 무너지고, 아버지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언니는 쪽창고에 함께 깃들 수 없어 다른 데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말도 안 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고단한 나날을 보냈던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냅니다.




쉽게 잠들지 못할 땐 여러 가지 상상을 해.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새벽 다섯 시까지는 나갈 수 없어. 하지만 이젠 밖이 너무 조용해도 잠들 수 없게 됐어. 손님이 없으면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는 엄마가 너무 안됐잖아. 그래서 나는 시끄러운 날에 잠이 더 잘 들어. (24∼25쪽)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아니 술집 한구석 쪽창고로 돌아가면, 이때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꼼짝없이 그곳에서 밖으로 한 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었다고 해요. 술손님이 모두 떠난 아침에 이르러서야 겨우 쪽문을 열고 나오는데, 땅밑하고는 너무 다른 여느 땅을 밟으면서 눈이 너무 부신 하루를 맞이하다 보면, 나랑 다른 사람들이 사는 터전이 참으로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고 해요.


  그런데 있지요, 이때까지 잘 모르거나 보이지 않던 모습이, 이때부터 새롭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린이 김소희 님네 집안이 쫄딱 무너진 탓에, 그린이 집안처럼 쫄딱 무너지거나 몹시 괴로운 또래 동무들 모습이 환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더욱이 ‘집안이 쫄딱 무너지’거나 ‘힘든 집안에서 지낸다’는 대목이 학급이나 학교에 알려지면, 교사를 비롯해서 또래 동무들 누구나 쉽게 따돌리거나 놀리거나 괴롭혔다는군요.



“송이,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걔네, 걔네 엄마! 다방 한대! 카페 같은 거 말고! 커피 배달하고 다닌대! 애들이 지나가다 다 봤대! 백선영은 엄마 배달할 때 막 따라다닌대! 걔네 아빠 어느 나라 사람인 줄도 모른대 …… 하는 짓이 딱 더러워.” (42쪽)



  만화책 《반달》은 반달처럼 생긴 술집 무대 뒤쪽에 숨겨진 쪽창고에서 어린 날을 살던 이야기를 그리면서, ‘나랑 똑같이 힘든 날을 보낸 또래 동무한테 손을 내밀지 못한’ 바보스러운 내 모습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그린이는 따돌림받는 동무를 돕거나 감싸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른 동무들이 이 아이를 놀리거나 괴롭혀도 아무 말을 못했다고 해요.


  따돌림받던 동무는 어느 날 전학을 갑니다. 그리고 교사한테서 시달리는 다른 동무 숙희를 만났다고 하는데요, 담임 교사는 가방 공장을 하다가 집안이 쫄딱 망한 숙희라는 아이를 매우 괴롭히면서 이죽거렸대요. 숙희는 한동안 학교를 안 나왔고, 동무 숙희가 걱정된 그린이는 숙희네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 보는데, 숙희네는 그린이가 사는 지하 술집 쪽창고보다 더 깊이 지하로 들어간 허름한 곳에서 동생을 보살피면서 숨어 살더랍니다.



“뭐야, 나 보러 왔냐?” “응! 괜찮아?” “어휴∼ 괜찮을 리가 있냐∼. 맨날 빚쟁이는 찾아오고, 엄마 아빤 지방으로 숨었는데, 돈도 별로 안 주고 가서 아∼주 심란해! 거기 계단 조심해. 어두워.” 숙희네는 지하로 내려가서 또 지하로 내려가는 깊은 곳에 있었다. 불행의 지하실 같은 게 있어서 내가 이쯤에 있다면, 숙희는 나보다 조금 더 아래, 더 컴컴한 불행의 지하실에 있는 느낌이었다. (98∼99쪽)



  햇볕 안 드는, 햇빛도 햇살도 안 드는, 그야말로 컴컴한 지하실이나 지하창고에 달빛은 들 수 있을까요? 햇빛도 달빛도 별빛도 지하실에는 가 닿을 수 없을까요?


  아무 빛이 가 닿을 수 없고, 전등불을 섣불리 켤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적잖은 아이들이 자랐고 살았습니다.


  저는 만화책 《반달》을 읽으면서 제가 어린이로 살았던 1980년대에 마주한 또래 동무를 하나둘 떠올렸습니다. 저는 고속도로 들머리에 항구랑 식품공장이 맞붙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또래 동무는 기찻길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골목에 살았고, 옐로우하우스가 우글거리는 골목에 살았고, 연탄공장 옆에 살았고, 저잣거리 귀퉁이 상가주택에서 살았습니다. 햇볕도 바람도 안 드는 곳에 사는 동무가 많았는데, 교실에서 같이 놀면서 어두운 그늘은 못 느꼈어요. 탄가루가 날리고 짐기차가 지나는 소리로 시끄러운 데에서 사는 동무가 많았는데, 운동장에서 함께 놀면서 깜깜한 그림자는 못 느꼈어요.


  제가 무디어서 그늘이나 그림자를 못 느꼈을 수 있는데요, 《반달》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어두운 집을 나와 학교에 갈’ 적에는 모든 어두운 발자국은 털고서 햇볕을 듬뿍 먹고 햇빛을 잔뜩 받아들이려는 몸짓이었으리라 느낍니다. 한 칸짜리 쪽집에서는 발 뻗을 곳조차 없지만, 교실이나 운동장에서는 땀을 뻘뻘 내면서 시름을 잊으려는 아이들이었다고 느껴요. 어둡고 시끄러우며 매캐한 곳이 우리 집이라면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모를 수 있을 텐데, 그린이는 바로 이런 곳에서 살며 늘 새롭게 꿈을 그렸다고 합니다. 활짝 웃으면서 해를 보고 노래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달빛을 곱게 맞이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지필 수 있는 둥지를.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이어도 마음에 꿈을 그려 긴긴 땅밑길을 지나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18.7.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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