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78. 배워 보렴



이가 돋아서 드디어 젖 아닌 밥을 스스로 씹어서 먹을 줄 아는 아기는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서 겉모습으로 따지지 않는다. 돌멩이도 나무토막도 쇠붙이도 종잇조각도 플라스틱마저도 손으로 척 집어서 입에 넣고 씹거나 물려고 하는 아기인 터라, 무엇을 주든 스스로 씹어서 맛을 보려 하고 느끼려 하며 알려 한다. 더없이 훌륭한 배움짓이다. 그런데 둘레 어른이 “아유, 그걸 어떻게 먹어?” 하고 한마디라도 거들라치면 아이들은 바야흐로 겉모습을 따진다. 징그러운 것이란 없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곁에서 거든 말을 고스란히 따라서 “징그러워서 안 먹어”라든지 “처음 본 거라 안 먹어” 같은 말을 내뱉고 만다. 이때에는 먹을거리로 배우는 살림하고 멀어진다. 낯선 출판사 낯선 작가 책이기에 안 읽어도 될까? 우리는 이름값이나 겉모습으로 책을 고르는가? 낯익은 출판사나 작가라 하더라도 ‘무엇이 얼마나 낯익은가?’ 하고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지난날에 아쉽다 싶은 모습을 보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얼마나 거듭나거나 나아졌는가?’를 스스럼없이 꾸밈없이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우리 스스로 배우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세워서 ‘이러면 안 돼’ 하고 금을 그으면 스스로 안 배우겠다는 뜻이다. 허름한 차림새로 다니는 100조 원 부자가 있다면, 이이는 허름한 차림새이니 바보일까? 까맣고 큰 자가용에, 까만 양복에, 반들반들한 머리카락에, 까만 가죽신을 꿰어야 뭔가 ‘있어 보이는’ 셈일까? 겉모습에 휘둘리면 아무것도 못 배우고, 아무것도 못 배우면 스스로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한다. 우리는 늘 속마음을 읽고 보고 배우고 나누고 가꿀 줄 알아야 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