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주지 않는 글쓰기



  나는 글쓰기나 책쓰기에서 봐주는 일이란 없다. 살펴보는 일은 있지만, 봐주는 일이란 없다. 봐줄 까닭이 없으니 안 봐준다. 맛없는 밥을 꾹 참고서 먹고 싶지 않다. 멋없는 글을 꾹 참고서 읽고 싶지 않다. 스스로 배우고 싶기에 글을 쓰거나 책을 쓴다. 스스로 배울 마음이 없다면 글이나 책을 쓸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나는 다른 사람 글이나 책을 안 봐준다기보다 내가 쓴 글이나 책을 안 봐준다. 다른 사람이 글이나 책을 어떻게 쓰든 아랑곳할 일이 없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은 살펴보면 된다. 그렇지만 내가 쓴 글은 살펴보기로 그칠 수 없어, 꼼꼼히 살펴서 낱낱이 따지고 짚어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새로 쓴다. 아주 자잘하구나 싶을 뿐 아니라, 나 아니면 알아볼 사람이 없다 할 만한 대목이 있어도, 이 하나 때문에 글종이 5000쪽이 넘는 글을 샅샅이 되읽으면서 엉성한 대목을 찾아내어 고쳐야 한다. 가끔은 내가 나한테 살짝 너그러워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가 나한테 너그러우면 거듭날 수 없더라. 뜸들이는 밥을 뜸이 아직 안 들었는데 뚜껑을 열 수 없고, 날개돋이하려는 나비가 아직 몸이 거듭나지 않았는데 고치를 뚫고 나올 수 없다. 2018.5.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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