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해고하다
명인 지음 / 삼인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350


왜 시골사람으로 살려 하느냐?
― 회사를 해고하다
 명인
 삼인, 2018.4.1.


우리는 곧잘 ‘귀농인’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그 말을 영 어색해한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쭉 서울에서만 살아온 우리에게 애초에 고향이란 없었다. (14쪽)


  《회사를 해고하다》(명인, 삼인, 2018)는 책이름대로 회사를 해고하고서 서울을 떠나 시골에 깃들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회사를 해고하다니, 말이 안 된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만, ‘사표 쓰기’하고 ‘해고하기’는 다를 수 있겠지요. 사표를 쓴다고 할 적에는 돌아갈 틈을 남긴다고 할 테지만, 회사를 해고한다고 밝힐 적에는 돌아갈 틈을 없애며 씩씩하게 나아가겠다는 뜻이 되어요.

  ‘해고(解雇)’라는 한자말은 ‘내보내다’를 뜻합니다. “회사를 해고한다”고 할 적에는 “회사를 내 삶에서 내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밤늦도록 회사에 매이지 않겠다는 이야기요, 주말도 없이 일만 하며 살지 않겠다는 이야기예요. 스스로 삶을 찾아서 하루하루 다르며 새롭게 마주하고 싶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해가 길어지고 짧아짐에 따라 ‘철’을 배울 차례구나. 2월의 흙과 3월의 흙은 어떻게 다른지, 3월에 먹을 것과 4월에 먹을 것은 어떻게 다른지,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거두는지, 철 따라 할 일이 다르고 철 따라 먹을 것이 다르니 (43쪽)

한 자루나 되는 농작물을 다듬을 때도, 해산물을 씻어 손질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제서야 농사가 기본인 시골집의 정주간이 왜 마루 바깥에 있고 신발을 신고 드나들게 지어졌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5쪽)


  그렇다면 서울을 떠나 시골에 갈 적에 비로소 “회사를 나한테서 내보낼” 수 있을까요? 서울에 살면서도 얼마든지 “회사에 매이지 않는 삶”을 지을 수 있지는 않을까요?

  누구는 서울에 그대로 머물며 회사하고 헤어질 수 있어요. 누구는 굳이 서울에 머물기보다는 시골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꿈을 키울 수 있고요. 《회사를 해고하다》는 회사를 내 삶에서 내보내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시골길을 고른 이야기도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살이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부딪히며 배우면 되어요. 처음 서울에서 회사살이를 할 적에 회사가 어떤 곳인지 다 알고서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틀을 알고, 한 해 두 해 흐르는 사이 저마다 나름대로 몸을 맞추는 길을 찾아요. 시골에서도 이와 같으니, 처음에는 철을 모르면서 살림을 하겠지만, 한두 해나 서너 해를 보내면서 차츰 봄철이며 겨울철을 깨닫습니다. 이윽고 다달이 다른 결을 배우고, 나날이 새로운 바람을 익히지요.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돈 좀 안 벌고 살고 싶어’였지만, 막상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눈을 떠 간다. (118쪽)

그때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냐’거나 ‘뭘 하고 살 거냐’는 따위의 질문을 나름대로는 삼가는 편이다. 나는 나이 서른에도 몰랐던 걸 왜 애들은 십대 때 이미 알아야 하나? (191쪽)


  회사를 나한테서 내보내고 서울에 머무는 살림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모로 익숙한 곳에 머물 적에는 새롭게 눈을 뜨기 어려울 수 있어요. 아주 낯선 곳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허우적거리다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알지 못하던 삶을 마주할 수 있어요.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배우는 삶이 있어요.

  굳이 서둘러야 하지 않으니, 차근차근 배우는 길을 걷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 돌아보자면 서른 살에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삶을 고작 열 몇 살 아이한테 묻거나 따질 수 없는 줄 배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버이자 어른으로서 마흔 줄에 접어들었어도 여태 몰랐던 시골살림이나 흙살림이라면, 아이들더러 시골이나 흙이나 숲을 좋아하거나 아끼거나 사랑하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기도 하겠지요. 다 같이 첫걸음을 떼는 삶이요, 다 함께 모두 새로 배우는 하루이니까요.


도시에 살 땐 성평등지수에서 대한민국 남성 중 상위 5퍼센트 안에 드는 남자 소리를 듣던 사람이 외지인으로 농촌사회에 빨리 안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가부장성’이라는 건 오래 곱씹어야 할 숙제다. (200쪽)


  《회사를 해고하다》를 쓴 분은 전남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힘씁니다. 처음부터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서 고흥에 깃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골에 머물 자리’를 찾아서 깃들었고, 요즈막에는 ‘손수 지어서 살아갈 보금자리’를 차근차근 짓는다고 해요.

  이동안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운다고 합니다. 서울살림이 얼마나 엉성했는가를 느끼면서 배우고, 서울하고 사뭇 다른 시골 성평등지수를 느끼면서 배운다고 합니다.

  저도 늘 느끼는데, 시골에서는 아직도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서 손에 물을 묻힐라’치면 다들 손사래를 칩니다. 사내는 얌전히 앉아서 가시내가 바치는 밥을 먹기만 하면 될 뿐이라고 여긴달까요. 이 낡은 틀을 깨자면 멀었달까요. 같이 짓고 같이 나누고 같이 누리는 길은 아직 시골에서는 아득하달까요.

  그러나 한참 먼 길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회사를 나한테서 내보낼 줄 아는 분들이 하나둘 시골에 깃들어 이 낡은 틀을 맞닥뜨리면서 천천히 손보거나 고치거나 바꾸어 내리라 느껴요.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사내랑 가시내가 함께 밥살림이며 옷살림이며 집살림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열리라 생각합니다. 이 길을 열려면, 우리는 먼저 ‘낡은 틀을 나한테서 내보내기’부터 해야겠지요. 2018.5.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