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4.24.


《황색예수》

김정환 글, 문학과지성사, 2018.3.5.



1980년대를 가로지르면서 ‘황색예수’를 읊은 말마디는 그무렵 무척 새로웠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그때에나 그 뒤 1990년대나 2020년대를 바라보는 요즈음에나 《황색예수》는 어쩐지 딱딱하다. 김정환 님 시를 읽을 때면 으레 문익환 님 시가 떠오른다. 김정환 님은 ‘봐줄 마음이 없이 딱딱하게’ 글을 여민다면, 문익환 님은 ‘너그러이 봐주고 싶은 마음으로 여리게’ 글을 여미지 싶다. 그렇다고 《황색예수》가 내내 딱딱하지만은 않다. “품에 안은 네 여자의 자궁처럼 진실이 추해 보이더라도(188쪽)”처럼 ‘여성 몸을 담아내는 글발’에서는 딱딱하지 않으려 하지 싶다. 다만 왜 남성 시인은 여성 몸을 이렇게 보고 재면서 빗댐말을 써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2018년 3월에 새옷을 입은 《황색예수》 첫머리를 보면 “이 책을 있게 한 모든 ‘분들과 것들’에 감사”라고 짤막히 말하는데, 새날을 앞두고도 김정환 님은 이렇게 딱딱하며 봐줄 마음이 없이 스스로 갇힌다. 이러다 보니 자꾸 어려운 낱말이나 말씨를 끌어들이면서 더 우물에 고이지 싶다. 문익환 님은 늘그막에 감옥에 갇혀 죽을 고비를 맞이했어도 외려 더 너른 품으로 따스하게 바라보았다는 대목이 새삼스럽다. 억지로 센 척하지 않아도 된다. 힘을 빼는 사람이 더 힘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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