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20. 글을 쉽게 쓰면 멋없을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뜻을 헤아릴 줄 안다면, 어떤 낱말로 생각을 담아서 이야기를 할 적에 즐거운가를 느낄 만하리라 봅니다. 멋부리고 싶다면 멋있는 말을 찾을 테고, 치레하고 싶다면 치레하는 말을 찾을 테지요. 수수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뜻이라면 수수하게 쓸 말을 찾을 테며, 즐겁게 이야기하려는 뜻이라면 즐겁게 쓸 말을 찾을 테지요.

  말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쉬운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려운 말입니다. 다만, 쉽다고 좋은 말이 아니며, 어렵다고 나쁜 말이 아닙니다. 우리한테 낯익기에 쉬울 수 있고, 우리한테 낯설기에 어려울 수 있습니다.

  ‘쟁기’를 모르면 ‘보습’도 모르고 ‘극젱이’도 모릅니다. 이러한 말을 모르면 ‘골’이라고 할 적에 어떤 골을 가리키는지 모르기 마련입니다. 흙말이나 시골말을 모르는 이한테는 쟁기도 보습도 극젱이도 어려운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면적·이면적·양면적·다면적’은 어떠할까요? 이 말씨를 쉽다고 여기는 이는 누구이며, 이 말씨를 어렵다고 여기는 이는 누구일까요?

왜 하는가 (글쓴이)
왜 하는 것인가 (엮은이 손질)

  제가 쓴 글을 받아서 싣는 곳에서 이 글월처럼 으레 고칩니다. 저는 ‘것’을 “네가 찾던 것이 여기 있네” 하고 말할 적에만 씁니다. 다른 자리에는 아예 안 씁니다. ‘것’ 쓰임새가 그렇지요. 아무 곳에나 ‘것’을 집어넣으면 말씨나 글씨 모두 거석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거나 나타내야 하는가를 잘 살피지 않는 바람에 ‘것’ 말씨가 자꾸 퍼져요. 힘주어 말하려는 뜻이라면 “왜 하고야 마는가”나 “왜 굳이 하는가”나 “왜 애써 하는가”처럼 쓰면 돼요.

집에서 가르쳐야 하는 까닭 (글쓴이)
하우스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 이유 (엮은이 손질)

  저는 영어를 싫어하지 않으나 영어로 얘기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굳이 안 씁니다. 저는 “집에서 가르치다”라고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하우스 트레이닝’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는 분 가운데 이런 말을 쓰는 분이 참말 있는가 보군요. 또는 고양이나 개를 아끼는 분 가운데 집고양이나 집개를 가르치는 일을 놓고 ‘하우스 트레이닝’이라 말하는 분이 있는가 보네요.

오직 석 줄로 (글쓴이)
단 석 줄로 (엮은이 손질)

  다른 분은 ‘단(單)’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직’이나 ‘오로지’를 씁니다. 때로는 ‘꼭’이나 ‘딱’이나 ‘다만’이나 ‘다문’을 씁니다. ‘그저’를 쓰기도 합니다.

가시내 (글쓴이)
여자 (엮은이 손질)

  시골에서는 으레 ‘가시내’라 합니다. 가시내이니 가시내라 하지만, 서울에서는 ‘가시내’라 하면 낮춤말이나 비아냥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왜 텃말은 낮춤말이나 비아냥으로 여기고 ‘여자·여성·여인’ 같은 한자말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까요? 그렇다면 ‘사내·머스마’도 낮춤말이나 비아냥말인 셈일까요?

새를 지켜보는 화가 (글쓴이)
화가의 새 관찰일지 (엮은이 손질)

  ‘관찰(觀察)’이라는 한자말은 어른한테 쉬울는지 모르나, 아이들은 좀처럼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보다·바라보다·살펴보다·지켜보다·들여다보다’를 그때그때 알맞게 골라서 씁니다. 그런데 엮은이는 ‘지켜보다’를 ‘관찰’로 바꿀 뿐 아니라, ‘-의’를 집어넣는 말씨로도 바꿉니다. 왜 이럴까요?

아이한테 이렇게 물어볼까요 (글쓴이)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해 볼까요 (엮은이 손질)

  아이를 낳아 돌보거나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아이한테 섣불리 ‘질문(質問)’이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묻다·물어보다’를 쓰겠지요. 또 아이들한테 ‘여쭈다·여쭙다’를 함께 들려주면서 어른한테 달리 쓰는 말이 있다고 가르치겠지요. ‘밥’하고 ‘진지’처럼 ‘묻다’하고 ‘여쭈다’를 쓰도록 이끌 줄 알아야 슬기로운 어른이 되리라 봅니다.

얼음에 홀로 선 펭귄 (글쓴이)
얼음 위에 홀로 선 펭귄 (엮은이 손질)

  얼음 ‘위’에는 못 섭니다. 왜 그러할까요? 얼음 위는 하늘이거든요. 서려면 ‘얼음에’ 섭니다. 나비가 머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나비는 ‘머리 위’에서 날아다닙니다. ‘위’라는 말을 영어 ‘on’처럼 아무 데나 붙이면 틀립니다.

청소년이 흔들리는 까닭은 자라고 싶어서 (글쓴이)
청소년들이 흔들리는 까닭은 자라고 싶어서 (엮은이 손질)

  ‘들’을 붙인다고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말씨로는 ‘들’을 웬만해서는 안 붙입니다. 저도 말이나 글에서 ‘들’을 거의 안 씁니다. 글쓴이가 틀리게 쓰지 않았다면 엮은이가 섣불리 고치지 않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새는 집을 놀랍게 짓는다 (글쓴이)
새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건축기술 (엮은이 손질)

  집을 짓습니다. 집을 ‘건축(建築)한다’고 말할 분이 있을까 모르지만, 사람도 새도 집을 ‘짓는다’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새’라고만 하면 되어요. ‘새들’처럼 ‘들’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 우산가게는 우산이 조금 남다릅니다 (글쓴이)
이 우산가게의 우산은 조금 특별합니다 (엮은이 손질)

  저는 ‘-의’ 없이 말을 하기에 “우산가게의 우산”처럼 제 글을 함부로 고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별하다(特別-)’는 ‘다르다’를 뜻할 뿐인 한자말입니다. ‘남다르다’를 애써 한자로 바꿀 일이란 없습니다.

  글을 쉽게 써도 얼마든지 멋있습니다. 텃말로 수수하게 쓰는 글도 얼마든지 곱습니다. 한자말이나 영어여야 멋있어 보인다고 여기면 좀 낡은 생각이리라 봅니다. 다 같이 즐거우면서 쉽게 쓰기를 바라요. 2018.3.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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