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지어요
김혜경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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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4


물맛·바람맛 따라 다른 밥맛을 잊으면
― 밥을 지어요
 김혜경
 김영사, 2018.2.9.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선물할 음식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없이는 좀처럼 하기 힘들다. (174쪽)


  날마다 밥을 지어서 먹는 살림을 누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마냥 어릴 적에는 으레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을 먹는 하루였고, 오늘 우리 집 아이들을 거느리는 어버이로서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차리는 하루입니다.

  아무리 고되거나 바쁘더라도 아이들 끼니를 건너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버이가 다른 일을 하느라 혼자 끼니를 건너뛰기는 하더라도 아이들은 밥때를 챙겨 줍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흐름이 조금씩 바뀝니다. 아이 스스로 밥상을 챙기도록 이끕니다. 쌀을 아이들이 손수 씻어서 불리고는, 스스로 밥물을 맞추어 끓이도록 이릅니다. 아직 아이들이 국이나 찌개를 끓이지는 못하나, 아이들을 불러서 국물간을 보라 하고, 밑반찬이나 김치를 할 적에 으레 옆에 앉히거나 세우니, 조금씩 어깨너머로 익히는 칼놀림이나 도무질도 있겠지요.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 엄마는 김장 때마다 뭔가 못마땅해하셨다. 동치미 맛이 제대로 안 난다며 물 탓을 하셨다. 전에는 약수를 길어다가 김장을 했는데 그 물을 쓰지 않으니 맛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22쪽)

물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약수에 따라 밥맛은 물론 밥의 색도 다르다. (35쪽)


  《밥을 지어요》(김혜경, 김영사, 2018)를 읽습니다. 이 책은 밥책일 수 있습니다. 밥짓기를 어떻게 즐거이 해 볼 만한가를 단출하게 알려주어요. 사진하고 길잡이글을 알맞게 넣습니다. 그리고 밥차림 이야기 사이사이에 ‘밥을 지어서 먹는 하루’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넣습니다.

  우리는 밥만 먹는 사람이 아니기에, 밥책이라 하더라도 밥짓기 길잡이만 다루기보다는 ‘밥을 짓는 마음’이나 ‘밥을 나누는 마음’이나 ‘밥을 지어온 길’ 같은 곁이야기를 나란히 다루면 한결 재미있구나 싶어요. 밥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쓴이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오늘 내가 가꾸는 밥살림을 돌아볼 만해요.


혼밥을 차리기 위해 일부러 장을 볼 필요까지는 없다. 사실 장을 보고 나면 너무 피곤해져서 밥상을 차릴 기력도 없다. 집에 있는 자료와 늘 쟁여두는 밑반찬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한 나만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84쪽)

밥상 차리기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먼저 계절, 날씨, 가족의 건강 상태와 취향, 근래의 식단, 냉장고 속의 재고 상태까지 고려한 뒤 치밀한 전략하에 통찰력을 갖고 오늘의 식단을 구상한다. (92쪽)


  《밥을 지어요》를 쓴 분은 물맛을 제대로 느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합니다. 물맛이 좋지 않으면 간장이며 동치미를 담글 수 없고, 물맛이 안 좋으면 밥맛도 좋기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저도 물맛을 느낀 지 고작 열 몇 해입니다. 수돗물하고 샘물하고 냇물이 저마다 맛이 다른 줄은 알았으나 도시에서 살 적에 그냥 수돗물로 밥을 지어 먹었을 뿐이에요. 곁님을 만나고서 ‘수돗물로 지은 밥은 너무 맛이 없고 냄새가 난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야 코를 킁킁이면서 돌아보았어요. 도시살림으로서는 스스로 무디어 버리는 셈 아닌가 하고. 아니 도시살림이든 시골살림이든 물맛 밥맛 풀맛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밥살림을 한다는 말을 못 꺼내겠구나 하고요.

  예부터 장맛은 물맛뿐 아니라 ‘바람맛’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바람이 드나드는 결에 말리고 삭히는가에 따라 장맛이 달라진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장맛뿐 아니라 벼맛도 이와 같을 테지요. 고장마다 물이며 바람이 다를 테니 벼가 자라면서 품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물이나 열매도 이와 같아요.

  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곁에서 자라는 벼하고, 자동차 지날 길 없는 두멧자락 논에서 자라는 벼는 바람맛이며 물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농약을 머금은 벼하고, 아이들 노랫소리를 머금은 벼도 맛이 다를 테고요.


“올해는 꼭 사먹어야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으레 다짐한다. 목이 아프니까, 이제 허리도 아프고, 손목은 또 어떤가? 식구도 얼마 없는데 남편까지 점점 바빠지질 않나? 작년에도 남았으니, 겨우 요만큼 할 거면 차라리 사먹는 게 싸지. 김장하지 않을 이유는 이렇게 해마다 늘어가지만 나는 또 어느새 배추와 고춧가루를 주문하고 있다. (198쪽)


  《밥을 지어요》라는 책 하나는 흔하거나 수수한 이야기에다가 흔하거나 수수한 밥차림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흔하거나 수수한 밥살림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늘 잊거나 잃어버리는 무척 커다란 이야기일 수 있어요.

  날마다 밥을 먹는 우리는 물하고 바람을 함께 먹는 삶이에요. 풀하고 흙도 함께 먹지요. 나비 날갯짓하고 제비 날갯짓이며 개구리 노랫소리도 함께 먹을 테고요. 우리는 밥 한 술이나 국 한 술에서 얼마나 너른 물이며 바람이며 흙이며 풀에 서린 맛을 느낄까요? 끼니마다 밥은 먹지만, 마음으로 먹으며 삶을 살찌우는 즐거움을 잊는다면, 밥을 짓는 사람 손길뿐 아니라, 밥이 되어 준 이 땅 뭇목숨에 담긴 사랑도 잊는 셈일 수 있습니다. 2018.4.1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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