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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클락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8월
평점 :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2005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유리망치'를 비롯해 '말벌', '푸른 불꽃'을
읽어봤는데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들이었지만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호러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었다. 이 책은 본격 미스터리의 가장 핵심 테마인 밀실 트릭을 소재로 한 네 편의 작품을
모았는데 그동안 밀실 트릭들을 다룬 작품들을 숱하게 봤지만 이 책에 실린 밀실 트릭은 나름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어서 본격 미스터리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딱 제격인 작품이었다.
먼저 '완만한 자살'은 조폭 조직원들의 연이은 권총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 속에 숨겨진 밀실 트릭을
파헤치는 내용인데 짧은 분량의 작품답게 그리 복잡하지 않은 트릭을 선보인다. 물론 내가 예상하지
못한 트릭이었는데 주인공이자 탐정 역할을 맡은 방범 컨설턴트이자 열쇠공인 에노모토 케이가 본의 아니게 밀실 상태인 사무실 문을 열게 되면서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두 번째 작품부터는 상당히 정교한 밀실 트릭들이 등장하는데 밀실 상태인 미술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마침 방범 상태 점검을 의뢰받고 잠입했던 에노모토 케이가 오히려 범인으로
몰려 스스로 결백을 밝히기 위해 범인을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CCTV 등으로 철저하게 보안이
되어 있는 곳의 허점을 찾아내기가 결코 녹록하지 않았는데 도면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도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그래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모티브로 사용되어
전에 읽었던 '앨리스 죽이기'도 연상시켰는데, 에노모토 케이와 미녀 변호사 준코가 티격태격하면서도
마술사처럼 신출귀몰하는 트릭을 사용한 범인의 정체를 추리해나가면서 결국 범인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통쾌하게 보여준다. 책 제목으로 쓰인 '미스터리 클락'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시계와
시간에 얽힌 밀실 트릭을 선보인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시계관의 비밀'이 딱 떠올랐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림으로 트릭을 설명할 정도로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정교한 트릭으로 무장하여 상당히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마지막 작품인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에선 정말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을
바닷속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데 앞선 작품들이 밀실 트릭 자체에 집중한 반면 이 작품에선 공감이
가는 스토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케케묵은 밀실 트릭을
얘기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시 유스케는 오히려 과학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밀실 트릭들이 가능하게
한다며 '유리망치'에 이어 이 책을 통해 여전히 밀실 트릭이 유효함을 몸소 증명해냈다. 탐정과
조수 역할을 맡은 에노모토 케이와 준코의 궁합도 나름 좋았는데 이 애매한 커플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계속 내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