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산장에서 말벌떼와의 사투를 벌이는 남자의 운명은?

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제목부터 내가 정말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말벌이라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는데

호러의 대가라 할 수 있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인지라 섬뜩한 얘기가 펼쳐질 거라 기대가 되었다.

영화로 봤던 '검은 집'에서도 사이코패스의 난도질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이 책에선 말벌을 이용한 살인 시도가 등장해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말벌이 등장하는 사건이라고 하니 애거서 크리스티의 '구름 속의 죽음'이 떠올랐는데

그 작품에선 단순한 트릭에 불과했지만 이 책에선 말벌의 습격이 실제상황이었다.

한 겨울의 외딴 산장에서 아내가 사라지고 말벌이 날아다니는 상황에 맞닥뜨린 나는

예전에 말벌에 쏘여 위험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공포를 느낀다.

하나 둘 등장하는 말벌과 아마 아내가 고의로 말벌을 풀어놓은 듯한 상황에 충격을 받은 나는

말벌과의 힘겨운 사투를 시작하는데 말벌을 피해 산장 안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지만

어느 곳도 말벌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주인공과 말벌들과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계속되는데

말벌 전문가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말벌에 대한 정보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외부로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상황이었는데 주인공은 나름 자신이 알고 있는 말벌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말벌떼와의 목숨을 건 처절한 전투를 치른다. 나도 어쩌다 사무실이나 방에 말벌이 등장하면

기겁을 하고 어떻게든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단순히

한 두 마리의 말벌과 다투는 수준이 아닌 산장에 존재하는 말벌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벌들을

상대해야 해서 글로 읽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상황이 저절로 연상되어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한편으론 주인공이 범인으로 추정한 그의 아내와 공범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인공 스스로도 도저히 납득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살해방법으로는 확실성도

떨어지고 설사 성공해 사고로 위장한다 해도 너무 거추장스럽고 깔끔하지 못한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그 와중에 주인공을 방문했던 남자가 주인공 대신 사고를 당하고, 아내와 공범이 산장에 돌아오자

주인공은 그들을 말벌이 있는 지하실에 가두지만 이후 충격적인 반전이 벌어진다. 

완전히 주인공에 공감하여 말벌과의 혈전을 동참하다가 느닷없는 반전에

마치 말벌에 쏘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듯한 멘붕상태에 빠지게 되었는데,

말벌이란 듣기만 해도 섬뜩한 소재를 가지고 능수능란하게 요리해서

독자들에게 호러와 미스터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말벌이란 소재 자체가 너무 치명적인 강렬함을 가졌기에 심리적인 공포가 배가 된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