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밀실트릭을 무너뜨려가는 과정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

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ㅣ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완전한 밀실상태에 간병회사의 사장이 살해당한다.

유일하게 사장실을 드나들 수 있던 전무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가 범인이 아님을 직감한

변호사 준코는 다른 침입가능성을 조사해달라고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를 고용한다.

범상한 에노모토는 밀실을 깨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지만 번번히 벽에 부딪히는데...

기시 유스케의 2005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이 책은 추리소설의 단골소재인 밀실트릭을

정교하게 설정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누가 어떻게 저질렀는지 밝혀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1부에선 에노모토와 준코 콤비(?)가 밀실트릭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그리는 한편 2부에선 범인이 어린 시절과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제목에서 왠지 범행도구가 유리망치인가 하는 연상을 하게 되지만 좀처럼 범행의 윤곽을 잡지 못한다.

탐정 역할을 맡은 방범 컨설턴트라는 정체가 묘한 에노모토가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타진하면서

조사하는 과정은 본격 추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사건이 발생한 빌딩의 12층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엘레베이터가 올라가고,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물리적으로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장실 옆방의 부사장실을 통해 출입할 수 있었던 전무가 강력한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이 뇌수술을 받아 작은 충격만 받아도 위험했던 상태여서 살인이 아닌 사고의

가능성도 검토되지만 검시 결과 사고 가능성이 배제되면서 흉기도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 

도대체 범인이 어떻게 사장을 살해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점점 증폭되었다.

간병 로봇이나 원숭이를 이용한 방법이나 비서들이 번갈아가며 변장하여 침입했다는 가설,

감시카메라를 교묘하게 피하는 방법 등 정말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는 모든 방법들을 하나하나

다 점검하는데 진실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엉뚱한 데 있었다.

범인의 사연을 담은 2부도 나름 흥미진진했는데, 범행에 이르기까지 산전수전 겪는 나름의 애환과

뜻밖의 기회를 접하고 완전범죄를 계획하여 만반의 준비 끝에 마침내 실행에 성공하지만 

결국 에노모토에게 꼬리가 잡혀 완벽한 밀실범죄가 붕괴되는 과정이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최근에 읽은 '말벌' 등 호러에 일가견이 있는 기시 유스케가 정통 본격추리물에도 능수능란함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는데 정교한 밀실트릭과 이를 깨뜨리는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