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고전을 읽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독서 모임 덕분에 이번에 완독하게 되었다. 삼고초려 만에 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책을 빌렸을 때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던 거 같다. 쉽고 읽기 편한 책만 읽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로 책을 빌렸을 때는 앞 부분을 조금 읽었다. 재밌었지만 다른 책들을 읽다 보니 시간이 지나 반납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완독을 각오로 읽었다. 재밌게 읽었다. 항상 나치의 홀로코스터에 대해 궁금했는데 디테일한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아이히만에 대해서도 아렌트와 함께 세밀하게 관찰했다. 좋은 내용이 너무 많아 책에 포스터 잇이 빼곡하다. 그 전부를 옮기기에는 시간과 품이 부족하다. 번역은 나쁘긴 하지만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영어 읽듯이 직독직해하면서 읽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번역이 구려서인지 읽기가 점점 힘들었지만 그래도 읽어보길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먼저 역자 서문에서 역자는 banality를 '평범성'으로 번역했다. 나는 이 부분이 오역이라 생각한다. '진부성'이 더 나은 번역이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보고서를 쓴 10년 후의 글을 보자.
수년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중략)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정은 아마도 특별할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아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p37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도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의도가 없었다.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관찰한 대상(아이히만)의 특성을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악의 평범성'은 보고서에서 딱 한 번 그것도 마지막에 등장한다. 중요한 개념이라면 그 단어는 한 번만 등장하지 않는다.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특별할 정도의 천박성',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결코 평범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 진부성, 천박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어로 banality는 진부함, 천박함의 의미로 쓰인다. 평범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부정적인 평범함의 의미에 가깝다. 아이히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이상주의자로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다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 아이히만은 경찰심문에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은 시온주의자들도 자신과 같은 이상주의자라 생각하고 그들을 좋아했다. 아이히만은 잘못된 이상을 따랐다. 때문에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죽음으로 보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했다.
독일은 항복 후 나치스와 타협한 과거를 가진 관리들을 채용하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했더라면 행정부를 전혀 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p68
이 글을 보면서 친일파 척결이 생각났다. 친일파를 척결해야 하지만 친일파를 척결하면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조금 이해가 갔다.
아이히만을 검사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그 중 한 명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더 더 정상이다" 라고 탄식했다. 그를 만난 성직자도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이라 발표했다.
아이히만은 허풍을 떠는 인간이었다. 500만 명의 유대인 죽음을 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도 그의 허풍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가 상투적이고 공허한 언어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관청용어가 그의 언어가 된 것은 상투어가 아니고서는 단 한 구절도 말할 능력이 정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105
그는 스스로 사유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주위의 언어들만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었다.
검찰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괴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광대라고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의심은 재판의 전체계획에 치명적일 수 있고, 그와 그 같은 이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안겨준 고통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의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가 행한 최악의 광대짓들은 거의 주목받지 않았고, 거의 보도된 적이 없었다. -p112
그 광대짓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아이히만은 처음에 선서를 거절한다. 선서를 거절하면서 한 말이 자못 거창하다. 선서하지 않는 건 젊음 시절에 배운 교훈이라는 둥, 도덕적인 이후로 거절한다는 둥. 그 후에 판사로부터 자신의 변호를 위한 증언을 하고 싶으면 선서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두말 않고 즉시 선서했다.
아이히만에게는 이것은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이었고, 그가 기억 속에서나 즉흥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북돋우는 관용구들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모순' 따위는 한 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p113
그는 모순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아이히만의 변호인들이 아이히만을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아이히만의 범죄보다도 그가 고상한 취향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아이히만을 '조무라기'라고 부르며 "우리가 그를 어떻게 장애물을 넘도록 만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세르바티우스 자신도 재판 이전에 이미 자신의 의뢰인이 '평범한 우편배달부'의 성품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p221
그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히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실패했다.
네델란드는 유대인 교수들이 해고되었을 때 학생들이 파업을 하고, 유대인을 독일 강제수용소로 처음 이주시킨 일에 대해 일련의 파업이 발생한 전 유럽에서 유일한 국가였다. -p249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모두가 공감한 건 아니었다. 덴마크 역시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루마니아는 나치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국가의 권력자들과 국민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치가 승리했다면 폴란드인들 역시 유대인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평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 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중략)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p392
여기서도 '평범한' 보다는 '진부한', '천박한' 이 더 좋은 번역같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광대였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게 현실이다.
번역 때문에 아쉽지만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