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고전을 읽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독서 모임 덕분에 이번에 완독하게 되었다. 삼고초려 만에 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책을 빌렸을 때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던 거 같다. 쉽고 읽기 편한 책만 읽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로 책을 빌렸을 때는 앞 부분을 조금 읽었다. 재밌었지만 다른 책들을 읽다 보니 시간이 지나 반납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완독을 각오로 읽었다. 재밌게 읽었다. 항상 나치의 홀로코스터에 대해 궁금했는데 디테일한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아이히만에 대해서도 아렌트와 함께 세밀하게 관찰했다. 좋은 내용이 너무 많아 책에 포스터 잇이 빼곡하다. 그 전부를 옮기기에는 시간과 품이 부족하다. 번역은 나쁘긴 하지만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영어 읽듯이 직독직해하면서 읽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번역이 구려서인지 읽기가 점점 힘들었지만 그래도 읽어보길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먼저 역자 서문에서 역자는 banality를 '평범성'으로 번역했다. 나는 이 부분이 오역이라 생각한다. '진부성'이 더 나은 번역이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보고서를 쓴 10년 후의 글을 보자.


 수년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중략)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정은 아마도 특별할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아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p37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도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할 의도가 없었다.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관찰한 대상(아이히만)의 특성을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악의 평범성'은 보고서에서 딱 한 번 그것도 마지막에 등장한다. 중요한 개념이라면 그 단어는 한 번만 등장하지 않는다.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특별할 정도의 천박성',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결코 평범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 진부성, 천박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독일어로 banality는 진부함, 천박함의 의미로 쓰인다. 평범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부정적인 평범함의 의미에 가깝다. 아이히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이상주의자로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다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 아이히만은 경찰심문에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은 시온주의자들도 자신과 같은 이상주의자라 생각하고 그들을 좋아했다. 아이히만은 잘못된 이상을 따랐다. 때문에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죽음으로 보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했다.



 독일은 항복 후 나치스와 타협한 과거를 가진 관리들을 채용하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했더라면 행정부를 전혀 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p68


 이 글을 보면서 친일파 척결이 생각났다. 친일파를 척결해야 하지만 친일파를 척결하면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조금 이해가 갔다. 



 아이히만을 검사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그 중 한 명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더 더 정상이다" 라고 탄식했다. 그를 만난 성직자도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이라 발표했다. 



 아이히만은 허풍을 떠는 인간이었다. 500만 명의 유대인 죽음을 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도 그의 허풍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가 상투적이고 공허한 언어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관청용어가 그의 언어가 된 것은 상투어가 아니고서는 단 한 구절도 말할 능력이 정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105


 그는 스스로 사유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주위의 언어들만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었다.



 검찰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괴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광대라고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의심은 재판의 전체계획에 치명적일 수 있고, 그와 그 같은 이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안겨준 고통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의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가 행한 최악의 광대짓들은 거의 주목받지 않았고, 거의 보도된 적이 없었다. -p112 


 그 광대짓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아이히만은 처음에 선서를 거절한다. 선서를 거절하면서 한 말이 자못 거창하다. 선서하지 않는 건 젊음 시절에 배운 교훈이라는 둥, 도덕적인 이후로 거절한다는 둥. 그 후에 판사로부터 자신의 변호를 위한 증언을 하고 싶으면 선서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두말 않고 즉시 선서했다. 


 아이히만에게는 이것은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이었고, 그가 기억 속에서나 즉흥적으로 자신의 기분을 북돋우는 관용구들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모순' 따위는 한 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p113 


 그는 모순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아이히만의 변호인들이 아이히만을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아이히만의 범죄보다도 그가 고상한 취향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아이히만을 '조무라기'라고 부르며 "우리가 그를 어떻게 장애물을 넘도록 만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세르바티우스 자신도 재판 이전에 이미 자신의 의뢰인이 '평범한 우편배달부'의 성품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p221


 그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히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실패했다.



 네델란드는 유대인 교수들이 해고되었을 때 학생들이 파업을 하고, 유대인을 독일 강제수용소로 처음 이주시킨 일에 대해 일련의 파업이 발생한 전 유럽에서 유일한 국가였다. -p249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모두가 공감한 건 아니었다. 덴마크 역시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루마니아는 나치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국가의 권력자들과 국민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치가 승리했다면 폴란드인들 역시 유대인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평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 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중략)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p392     


 여기서도 '평범한' 보다는 '진부한', '천박한' 이 더 좋은 번역같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광대였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게 현실이다. 



 번역 때문에 아쉽지만 훌륭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권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방통의 죽음이 안타깝다. 




 나와 방사원은 황충, 위연과 더불어 먼저 서천으로 가겠소. 군사께서는 관운장, 장익덕, 조자룡 셋과 함께 형주를 지켜주시오. -p70 


 실로 적절한 분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이 직접 새롭게 자신의 수하가 된 장수들을 이끌고 서촉을 치고, 믿음직한 과거의 장수들에게 형주를 지키게 했다. 유장보다 조조를 더 두려워했음이 보이는 구성이다. 결국 힘이 모자라 제갈량과 장비, 조운이 후군을 이끌고 오긴 했지만.



 촉을 다스리고 있는 유장을 보면 어리석은 것 같다. 부하들의 충언에도 너무 유비를 철썩 같이 믿는다.


 보통 유장의 성격을 나타낼 때 어리석고 나약하다란 말이 자주 쓰이고 있으나 공정하게 말한다면 선량하고 순진하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p72

  

 둘 다 맞는 말 같다.


 

 정사 방통전을 봐야겠다. 방통은 참 독특한 캐릭터이다. 약간 위아래도 없는 거 같다. 연의에서 방통은 유장과 유비의 연회에서 유비에게 보고도 안하고 유장을 제거하려 한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하는 수가 없구려. 먼저 손을 쓰고 나중에 주공께 까닭을 말씀드리는 게 옳겠소. -p80


 암살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방통은 그 이후의 상황까지 헤아렸을까? 세상의 비판은 자신이 뒤집어 쓰더라도 주군을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유비도 화내지만 방통을 크게 혼내지는 않았을 거 같다.



 7권을 읽으면서 조조에 대한 정이 더 덜어졌다. 초반부터 함께 해던 순욱과 순유를 내치는 장면에서다. 


 풀어보니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는데, 조조가 친필로 뚜껑을 봉한 것이었다. 

 순욱을 불길한 느낌을 누르며 봉함을 뜯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그릇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p108 


 조조는 점차 천자를 업신여기고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한다. 한 황실의 충성을 위해 일했던 순욱은 조조를 만류한다. 그것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순욱과 순유는 조조의 눈 밖에 난다.



 유비는 서천을 얻을 때 항복하는 자는 군사로 거두어 쓰고 항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위연과 황충의 반목을 눈부신 용인술로 해결했다. 유비는 잘못을 저지른 위연에게 황충이 지극히 말려 용서한다고 말했다. 위연은 황충에게 고마워하고 황충은 자신이 위연을 헐뜯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위연을 감싼 것처럼 하는 유비를 보고 자신의 옹졸함을 뉘우쳤다. 진짜 유비b



 하지만 연의에서 유비는 덕을 베풀다 방통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 방통의 말이 시원찮아서 자신의 말과 바꿔탄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차를 바꿔준 거라 볼 수 있다. 방통이 감격했음을 말할 것도 없지만... 유비의 덕을 높이고 방통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소설 장치다. 나관중b



 유비는 익주목이 되고 항복한 문무에게 후한 상을 주고 벼슬을 높여 준다. 원래부터 거느린 세력에게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우에게 황금 오백근, 은 천근에 오십만 전과 촉에서 난 좋은 비단 천 필을 보냈으며 다른 문무의 관원들에게도 등급을 나누어 골고루 상을 내렸다. -p253

 

 유비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관우는 유비에게 투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실을 얻은 것이 기뻤다. 관우는 최고의 투자자였다.



 조조는 후사를 고민한다. 첫 째 조비보다 셋 째 조식을 더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가후에게 의견을 묻자 가후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다. 조조가 다그치자 이렇게 말한다.


 아, 그저 원소와 유표가 제 자리를 이을 자식을 고르던 일을 잠깐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중략) 

 그대도 어지간하구나. 다음부터는 말을 바로 하라

 조조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은 뒤 마침내 맏아들 비를 왕세자로 세웠다. -p355 

 

 가후 참 능구렁이 같다. 원소와 유표는 맏아들을 후사로 정해놓지 않아 자식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이 말을 듣고 조조도 마음을 굳힌다.



 삼국지 재밌으면서 교훈도 많다. 삼국지의 각 사건에 관한 다양한 견해도 많아서 더욱 재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화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재밌게 읽었다. 그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꼭 봐야겠다. 



 후룬 보고서에서는 중국 부호들의 연평균 소비액이 2백만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연간 수입 600위안 이하를 빈민의 기준으로 삼을 경우 2006년에는 중국 전체 빈민 인구의 수가 3천만 명을 넘었고, 연간 수입 800위안 이하로 그 기준을 조금 높일 경우 빈민 인구의 수는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2009년 중국의 빈민 인구는 얼마나 될까? 나는 그 통계수치를 구할 방법이 없다. -p214 


 중국의 연평균수입이 여전히 세계 백 위라는 사실이다. (중략) 민간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은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p215


 1위안의 환율을 찾아보았다. 188원 정도 된다. 대충 200원 잡으면 800위안은 16만원이다. 일당도 아니고 월급도 하니고 연봉이 16만원이다. 그게 1억 명에 달한다. 2006년에 중국에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놀랍다.


 중국은 세계 두번째 경제대국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가난에 시달린 남치범 둘은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를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한다.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라 계획도 엉성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두 납치범은 도시락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었다. 그 중 한 명이 어디선가 돈을 빌려다가 도시락 두 개를 사 와서는 한 개는 아이에게 먹이고 나머지 한 개를 둘이서 나눠 먹었다. 구출된 아이는 나중에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아저씨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그냥 풀어주시면 안 되나요?" -p217



 중국의 가난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끝도 없이 나온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약진운동 기간에 쓰촨 성에서만 811만명이 기아로 사망했따. 아홉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굶어 죽은 셈이었다. -p227 


 한 성에서만 811만 명이라. 상상하기도 힘든 숫자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중국으로서는 부끄러운 지우고 싶은 역사이다.



 아래는 후기의 말미의 글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속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354

 


 아래는 이 책에 대한 평 중 하나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평이다. 


 한편으로는 배꼽 빠지게 재미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깊은 감동을 주면서도 충격적인 소설을 찾기란 힘들다. 논픽션에서 그런 작품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위화의 이 책은 바로 그런 놀라운 책이다. _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올 해 최고의 책 후보다. 강력히 추천드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4-09-15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자신이 관통해온 문화대혁명 시기를 10개의 키워드로 위트있게 서술한 작품이죠. 문혁당시 치과의사로 복무했던 그가 앞 건물 문예부의 한가함이 부러워 직종 변환한 것이 위대한 작가 탄생의 첫 걸음이 되었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던 사건이죠.

고양이라디오 2024-09-19 13:47   좋아요 0 | URL
그 이야기도 재밌었어요ㅎ 맨날 산책하는 문예부ㅎㅎ 작가의 이야기 극적인 게 많아서 소설같았어요^^ 정말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ㅎ
 














 

 중국 작가 위화의 에세이를 읽었다. 오랜만에 읽는 끝내주는 책이었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겪었다. 그는 그가 겪은 고통을 때로는 재밌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풀어 낸다.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그 당시 중국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책은 귀했다. 위화와 한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알렉상드르 뒤마의 <춘희>를 빌려 읽었다. 책을 3분의 1쯤 읽자 소설이 너무 훌륭해서 책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책 읽기를 중단하고 밤새 필사를 한다. 


 얼마 전에 누군가 30년의 독서가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드넓은 바다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언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전에 쓴 글 말미에서 나는 나의 독서 이력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길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04 


 멋진 문장이다.



 만일 문학에 정말로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런 것이 그 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하이네가 쓴 시가 바로 내가 유년 시절 영안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p109  


 하이네의 시구는 "죽음은 서늘한 밤이다" 라는 구절이다. 이는 위화가 여름 한더위 속에서 몰래 영안실 시멘트 침대에 누워 느꼈던 감정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저자와 소통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이 책은 열 개의 단어를 주제로 열 개의 챕터로 쓰여져 있다. '글쓰기'에 대한 챕터가 정말 재밌었다. 위화와 국어 선생님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코미디가 따로 없다. 꼭 읽어보시길.



 문화대혁명 시기는 정말 무시무시한 시기였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에는 법원이 없었고 판결이 난 뒤에는 상소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세상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범인이 공개 비판대회에서 사형에 처해지면 애당초 상소할 시간조차 없었고 곧장 형장으로 끌려가 총살이 집행되었다. -p152



 문화대혁명 시기가 끝나자 전혀 다른 세상이 중국에 찾아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극단적으로 억압된 시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반드시 극단적으로 방종하는 시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네를 타는 것처럼 한쪽 끝이 높이 올라가면 반대쪽 끝도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p194


 이 주장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네 비유는 멋지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아주 파란 하늘이 있었다. -p195

 

 30년 전에 비해 중국은 훨씬 부유해졌다. 한국도 그렇다. 하지만 가끔 과거가 그립다. 그 때는 낭만이 있었다. 예전에는 다같이 가난했다. 가난 속에서도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자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가난은 멋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낭만이 사라졌다.


 

 중국의 빈부격차는 책에서 보니 예상보다 훨씬 심했다. 


 1980년대 중반에 동부 연해 지역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코카콜라를 마셨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중부 산간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나온 사람들이 설을 쇠러 고향으로 돌아갈 때 고향 친지들에게 선물로 가져가는 것도 코카콜라였다. 그들의 고향 친지들은 아직 코카콜라를 구경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p208


 오늘날의 중국은 격차가 몹시 심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한쪽은 휘황찬란하고 평탄한 길이며 다른 한쪽은 각박하고 가파른 절벽 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이상한 극장에 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곳은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p210


 극장의 비유, 역시 멋진 비유이다. 위화는 시각적인 비유를 참 잘 쓴다.




 재미있는 부분들을 소개하려 했지만 부분들만 떼어와서는 재미와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가 없다. 한 챕터 한 챕터가 모두 단편 소설처럼 재미나게 읽힌다. 완성도 높은 에세이다. 기승전결. 빌드업이 미쳤다. 감탄하며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지를 보다 보면 웃긴 장면들도 많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는 군사들을 이끌고 후퇴한다. 후퇴하면서 조조는 숲이나 골짜기 산길로 이동한다. 지형을 보면서 조조는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는다. 자신이 군사를 부렸다면 이곳에 군사들을 숨겨놓았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런 말을 할 때 마다 군사들이 튀어나온다. 제갈량이 미리 숨겨둔 군사들이었다. 이게 몇 번이 반복되니 조조가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을 때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재밌다.


 조조도 말에서 내려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다시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문득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얼마 전 승상께서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다가 난데없이 조자룡이 뛰어나와 많은 우리 편 인마가 꺾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무슨 까닭으로 웃으십니까?"   -p153



 삼국지연의에서 노숙은 오와 촉을 오가는 사자 역할을 한다. 공명에게 속아 넘어가기 일쑤다. 실제 정사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무예에도 능했으며 주유가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천거해서 대도독의 자리에 올랐다. 삼국지연의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감로사 앞에서 말을 내린 유비는 먼저 손권부터 만나보았다. 손권은 말로만 듣던 유비를 직접 보게 되자 그 생김과 거동이 범상치 않음에 마음속으로 은근한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손권과 유비는 예를 마친 뒤 방장으로 들어가 국태부인 앞으로 갔다. -p274

 

 소설 속에서는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실제 유비의 모습이 어땠을지 참 궁금하다. 



 조조가 동작대에서 무장들의 활 솜씨를 구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과녁에서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활을 쏘는데 모두 백발백중이다. 여포가 방천화극에 활을 쏜 게 백 걸음 아니었나?


 그리고 한편에다 과녁을 마련케 하고 거기서 백 걸음 떨어진 곳에 금을 그은 뒤 무관들을 두 패로 나누었는데 (중략) 

-p311



 아래는 유비가 형주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가 놀라는 장면이다. 들고 있던 붓을 땅에 떨어뜨릴 정도였다. 정욱이 왜 이렇게 놀래냐고 묻자 조조가 답한다. 


 유비는 사람 가운데 끼여든 용 같은 인물로 아직껏 그 놀 물을 얻지 못했을 뿐이오. 그런데 이제 형주를 얻었다 하니 이는 고단한 용이 큰 바다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내가 어찌 놀라지 않겠소! -p318  


 내 생각에 조조가 유일하게 자신과 대등하다 인정한 영웅은 유비였다. (손권도 높게 치긴 했다.) 정사에서도 유비가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예주목인가?로 삼고 항상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수레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자신과 대등한 친구를 만난 조조가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이 된다.


 

 이문열삼국지를 7권까지 읽었다. 얼른 10권 까지 다 읽어야겠다. 그래야 정사 삼국지를 스포없이 볼 수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