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위화의 에세이를 읽었다. 오랜만에 읽는 끝내주는 책이었다. 그는 문화대혁명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겪었다. 그는 그가 겪은 고통을 때로는 재밌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풀어 낸다.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그 당시 중국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책은 귀했다. 위화와 한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알렉상드르 뒤마의 <춘희>를 빌려 읽었다. 책을 3분의 1쯤 읽자 소설이 너무 훌륭해서 책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책 읽기를 중단하고 밤새 필사를 한다. 


 얼마 전에 누군가 30년의 독서가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드넓은 바다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언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전에 쓴 글 말미에서 나는 나의 독서 이력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길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04 


 멋진 문장이다.



 만일 문학에 정말로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런 것이 그 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하이네가 쓴 시가 바로 내가 유년 시절 영안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p109  


 하이네의 시구는 "죽음은 서늘한 밤이다" 라는 구절이다. 이는 위화가 여름 한더위 속에서 몰래 영안실 시멘트 침대에 누워 느꼈던 감정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저자와 소통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이 책은 열 개의 단어를 주제로 열 개의 챕터로 쓰여져 있다. '글쓰기'에 대한 챕터가 정말 재밌었다. 위화와 국어 선생님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코미디가 따로 없다. 꼭 읽어보시길.



 문화대혁명 시기는 정말 무시무시한 시기였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에는 법원이 없었고 판결이 난 뒤에는 상소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세상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범인이 공개 비판대회에서 사형에 처해지면 애당초 상소할 시간조차 없었고 곧장 형장으로 끌려가 총살이 집행되었다. -p152



 문화대혁명 시기가 끝나자 전혀 다른 세상이 중국에 찾아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극단적으로 억압된 시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반드시 극단적으로 방종하는 시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네를 타는 것처럼 한쪽 끝이 높이 올라가면 반대쪽 끝도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p194


 이 주장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네 비유는 멋지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아주 파란 하늘이 있었다. -p195

 

 30년 전에 비해 중국은 훨씬 부유해졌다. 한국도 그렇다. 하지만 가끔 과거가 그립다. 그 때는 낭만이 있었다. 예전에는 다같이 가난했다. 가난 속에서도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자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가난은 멋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낭만이 사라졌다.


 

 중국의 빈부격차는 책에서 보니 예상보다 훨씬 심했다. 


 1980년대 중반에 동부 연해 지역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코카콜라를 마셨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중부 산간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나온 사람들이 설을 쇠러 고향으로 돌아갈 때 고향 친지들에게 선물로 가져가는 것도 코카콜라였다. 그들의 고향 친지들은 아직 코카콜라를 구경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p208


 오늘날의 중국은 격차가 몹시 심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한쪽은 휘황찬란하고 평탄한 길이며 다른 한쪽은 각박하고 가파른 절벽 길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이상한 극장에 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곳은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p210


 극장의 비유, 역시 멋진 비유이다. 위화는 시각적인 비유를 참 잘 쓴다.




 재미있는 부분들을 소개하려 했지만 부분들만 떼어와서는 재미와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가 없다. 한 챕터 한 챕터가 모두 단편 소설처럼 재미나게 읽힌다. 완성도 높은 에세이다. 기승전결. 빌드업이 미쳤다. 감탄하며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